북한이 4일 ‘전술유도무기’ 등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로 무력시위를 재개한 가운데 청와대와 국방부의 대응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 5일 과시하듯 미사일 발사 장면이 담긴 사진을 공개할 때까지 정부가 ‘전술유도무기’ 발사 사실을 발표하지 않은 데다 탄도미사일 발사 여부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어서다. 북한의 무력시위 재개로 어렵게 조성한 대화 동력이 훼손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한 의도적인 ‘로키(low-key)’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미사일 발사 추가 발표 안 한 정부
합동참모본부는 4일 오전 9시 24분경 “북한이 9시 6분경 호도반도 일대에서 불상의 단거리 미사일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전 10시 5분경에는 “북한이 9시 6분에서 27분까지 원산 북방 호도반도 일대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불상의 단거리 발사체 수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쏜 무기를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했다가 40여 분 만에 ‘단거리 발사체’로 바꾼 것.
하지만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5일 오전 전날 훈련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개한 전술유도무기가 러시아 탄도미사일의 개량형인 ‘북한판 이스칸데르’라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이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발사체 종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줬다”며 “바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알려진 단거리 지대지탄도미사일이라 정신이 번쩍했다”고 적었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이날 오후 ‘북한 단거리 발사체 발사 관련 입장’을 내고 “한미 정보 당국이 공동으로 정밀 분석 중”이라며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해 240mm, 300mm 방사포를 다수 발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거리 미사일→단거리 발사체→전술유도무기로 수정해 발표하면서도 이 무기가 유엔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인지에 대해선 분석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
군이 전날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시간은 4일 오전 10시 전후. 하지만 통상 북한의 도발이 계속 이어질 경우 새로운 상황을 추가 발표해온 군이 이번엔 단거리 미사일 발사 사실에 대해선 북한이 사진을 공개할 때까지 발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방사포에 비해 훨씬 민감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 사실을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NSC 대신 장관회의 연 靑 “대화 동참 기대”
청와대도 ‘로키’ 대응을 이어갔다. 청와대는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아니라 긴급회의”라고 밝혔다. 북한 도발에 빠짐없이 열었던 최고위 안보회의인 NSC를 소집하지 않은 것. 청와대는 2017년 8월 28일 북한의 방사포 발사 때도 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했다. 이어 북한 도발 6시간 24분 뒤인 오후 3시 반경 내놓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에선 “정부는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 간 9·19 군사합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북한이 조속히 대화 재개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도발’이나 ‘규탄’ 등의 표현 없이 유감 표명과 함께 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은 것. 청와대는 관계부처 긴급회의 소집 시간 등 구체적인 대응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취임 2주년을 앞두고 대형 악재를 맞은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신임 군 지휘부 업무보고에서 9·19 군사합의 이행을 강조한 가운데 북한이 하루 만에 이를 정면 위배하는 무력시위에 나선 만큼 대북정책 추진 여건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진 상황. 특히 미사일 도발 중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3월 5일 대북특사단과의 면담에서 내놓은 첫 번째 약속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이제 더는 새벽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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