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급차로 병원까지 2시간… 닥터헬기가 우리에겐 생명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7일 03시 00분


[닥터헬기 소리는 생명입니다]<1>섬-산간지역 환자의 유일한 희망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보세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외상외과 교수)의 말대로 손을 움직여 본 조명희 씨(42·여)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몇 시간 전, 경기 이천시의 한 정육점에서 기계를 청소하다가 왼쪽 손목이 완전히 절단됐을 때만 해도 출혈이 심해 목숨을 잃을 위기였다. 살아남아서 자신의 뜻대로 손을 움직이는 게 기적 같았다.

지난해 12월 조 씨가 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 가능한 가장 가까운 병원은 차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조금만 지체해도 신경이 손상돼 봉합이 안 될 수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조 씨를 구한 것은 이 교수가 탄 응급의료전용헬기(닥터헬기)였다. 조 씨는 하늘에서 이 교수의 응급처치를 받은 뒤 20분 만에 아주대병원에 도착해 수술을 받았다. 조 씨는 “점점 가까워지는 헬기 소리를 들으면서 ‘이제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6대가 운영되는 닥터헬기가 실어 나른 환자는 지난해에만 1676명이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이나 산에서 생명의 위기를 맞은 환자들에게 닥터헬기는 ‘생명의 동아줄’이다. 올 2월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전선 작업 중 12m 아래로 추락한 이종균 씨(43)가 그랬다. 경추와 척추가 부러져 신경 손상 위험이 컸지만 닥터헬기가 긴급 출동해 이 씨를 20분 만에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으로 옮겨 손상을 막았다. 이 씨는 “닥터헬기 덕분에 두 번째 인생을 찾았다”고 말했다.

인천 옹진군 신도에 사는 김두선 씨(65)는 27년째 앓고 있는 심장질환 탓에 한 해 두세 차례 닥터헬기의 도움을 받는다. 그의 부인 백정임 씨(65)도 2012년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닥터헬기 덕에 목숨을 건졌다. 닥터헬기가 없을 땐 해경 공중부양선과 구급차를 타고 2시간이 걸려 인천 길병원까지 가야 했다.

닥터헬기 덕에 새 생명을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닥터헬기가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상에서 지체되는 시간을 단 1분이라도 줄여야 소생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절박함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겐 닥터헬기로 인한 소음과 먼지 등 당장의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응급구조에 전념해야 할 구조대원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착륙하는 과정에서 ‘닥터헬기 바람에 튄 돌로 차량이 긁혔다’는 차주를 상대하는 일이 적지 않다. 전남 A병원은 주변 아파트 주민의 소음 민원 탓에 닥터헬기 계류장을 인근 신안군 압해도로 이전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국민 대다수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잠깐의 불편을 감내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10∼50대 1000명을 설문한 결과 ‘닥터헬기가 관공서나 학교 운동장 등 환자가 있는 어디서나 뜨고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데 72.8%가 찬성했다.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선 잠깐의 불편이나 손해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확인된 것이다.

또 응답자의 59.2%는 ‘닥터헬기가 24시간 운항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는 사전에 허가된 이착륙장인 인계점에서 해가 지기 전에만 뜨고 내릴 수 있다. 각 문항에서 ‘중증환자를 이송할 땐 헬기가 어디서나 뜨고 내리도록 허용하자’는 의견을 더하면 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은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둔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 근처의 닥터헬기 소음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는 물음엔 44.7%가 ‘횟수 제한 없이 감수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낮에는 상관없다’ ‘3, 4회는 괜찮다’는 응답도 각각 32%, 18.2%였다. 닥터헬기 한 대가 출동하는 횟수가 하루 평균 3회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 94.9%가 닥터헬기 소음을 ‘생명의 소리’로 여기고 견딜 수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다만 불편을 견뎌야 하는 헬기장 주변 주민에겐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47%로 많았다. 응답자의 80.5%는 닥터헬기 이착륙 전 문자메시지 알림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박성민 min@donga.com / 옹진=송혜미 기자
#닥터헬기#이국종 교수#소음#생명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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