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패스트트랙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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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파행 빚은 패스트트랙 지정, 제 역할 못한 정치권과 검경 책임
선거법 개정, 형사사법제도 개혁을 여야 합의로 풀지 못한 건 잘못
소모적 정쟁은 하루빨리 끝내고 합리적 논의로 해결방안 찾아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지난달 말 대한민국 국회에서 고속도로, 즉 패스트트랙(신속처리절차)이 열리고 기관차가 출발했다. 3개의 짐이 그 안에 실렸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 제정안,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하나하나가 폭발성이 강한 사안이라 대한민국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정치권이 관심을 가진 쪽은 아무래도 선거법과 공수처법이다. 국회는 전면 중단되었다. 자유한국당은 여의도를 벗어나 전국을 순회하며 강경한 장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백주에 물벼락을 맞고 주변의 몸싸움에 시달리다 급하게 피신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경위 여하를 떠나 민주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법조계에서도 해묵은 검경 갈등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해외 출장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하면서, 수사권 조정을 위한 패스트트랙 지정이 비(非)민주적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패스트트랙을 출발한 기관차가 무사히 종착점에 도달하게 될지, 그 종착역은 어떤 곳일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2012년 5월 제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로 도입된 패스트트랙은 소모적 정쟁으로 인해 중요하고 시급한 안건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연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안건은 ‘180일 이내 상임위원회 심의, 90일 이내 법제사법위원회 검토, 본회의 부의’의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지정일로부터 330일이 지나면 상임위나 법사위 등 중간절차가 끝나지 않았더라도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되어 있다.

패스트트랙은 정치권의 소모적 다툼 때문에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실패해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패스트트랙 자체가 격렬한 정치 투쟁과 사회 갈등을 불러왔으니 아이러니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정치권과 검찰, 경찰의 큰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지금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분쟁은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 국회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소수 의견에 대한 배려 역시 민주주의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상반되는 두 관점을 조화하기 어려웠기에 국회의 의사 결정이 지연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패스트트랙을 도입한 것이다.

패스트트랙 제도는 국회의 자율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위험성을 품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만 한정적으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등 운용에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정치 게임의 기본 룰을 정하는 선거법 개정과 형사사법 절차의 근간을 바꾸는 검경 수사권 조정 같은 문제를 국회의 통상 절차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이 과연 타당했는지, 아쉬움이 적지 않다.

검경 간 수사지휘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수사는 사회공동체에서 범죄를 척결하고 예방하여 법질서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사 절차에서 인권 보장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런 목적에 부합할 수만 있다면 검사가 수사를 하든, 경찰이 수사를 하든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런 기본을 벗어나 ‘기관 이기주의’에 치우치거나, 주어진 권한에 연연해 국민을 도외시한 본말전도는 없었는지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주인은 실력 있는 봉사자를 먼저 챙길 것이다. 국민은 범죄를 신속·철저하게 처벌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원한다. 그야말로 능력 위주다.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문제 외에도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시급한 문제는 많다. 국회 파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걱정과 근심이 크다. 낭비적인 정쟁은 신속하게 지양되어야 한다. 패스트트랙의 종착점을 기다리지 말고 국회에서 여야 간 합리적 토론과 논쟁, 검찰과 경찰의 냉정한 의견 개진을 통해 원만한 해결 방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패스트트랙#선거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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