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을 지나 특별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면 고요한 불빛 아래 석상들이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는 미소를, 어떤 이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장의 풍경이다.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인 나한(羅漢·사진)은 석가모니 제자이자 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다. 강원 영월군 창령사터에서 나온 오백나한은 2001년 주민의 신고로 존재가 알려졌고, 이듬해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형태가 완전한 상 64점을 포함해 나한상과 보살상 317점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진행된 특별전에서 소개된 나한상 88점을 서울로 모셔와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전시는 1부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들’과 2부 ‘일상 속 성찰의 나한’으로 구성됐다. 1부 전시장에는 벽돌 바닥 위에 33개의 좌대를 세우고, 그 위에 32개의 나한상이 배치됐다.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나한부터 수행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나한까지 저마다의 표정에서 각기 다른 깨달음이 전해진다. 한 곳은 “당신 마음속의 나한을 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빈 좌대로 남겨져 있다. 호기심에 좌대 위로 얼굴을 갖다 대면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2부 전시장은 탑처럼 쌓아 올린 스피커 700여 개 사이사이에 나한상 29구가 파묻혀 있다. 현대예술가 김승영 설치작가와의 협업으로 꾸려진 이 공간은 번잡한 빌딩 숲에서 성찰하는 나한을 형상화했다. 도심의 소음과 물방울과 종소리를 결합한 독특한 배경음이 함께 울려 나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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