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은 장소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어느 곳에 오래 살수록 지명이나 랜드마크가 머리에 새겨진다. 예를 들면 택시를 타고 우리 집에 갈 땐 동네서 유명한 만두집 앞에서 좌회전을 한다. 그 만두집을 아는 택시기사가 꽤 많다. 간혹 지명이 바뀔 때도 있다. 한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 신촌과 신천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나처럼 헷갈리는 외국인이 한두 명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 신천역이 잠실새내역으로 바뀌었다. 이제 ‘잠실’로 시작하는 지하철역이 세 개(잠실역, 잠실새내역, 잠실나루역)나 있다. 신천역과 신촌역을 헷갈려 잘못해서 가는 사람은 없어지겠지만 그 대신 “우리 어느 잠실역에서 만나는 거야”같이 새로운 혼란이 생길 것 같다. 이미 한 친구는 이를 헷갈려 잘못 내린 적이 있다. 가리봉역도 재밌다. 가리봉역은 지역이 바뀌고 정보통신 업체가 많아지면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었다.
지명의 변화는 그 지역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옛 미아삼거리역이 지금은 미아사거리역이 됐다. 2014년 바뀌었는데 나는 몇 년간 알지 못했다. 최근 보니 ‘삼’이 ‘사’로 바뀌어 있었다. 그 지역의 고가도로가 철거된 뒤 삼거리가 사거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명이 바뀌는 이유는 다양하고 흥미롭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모든 지역, 도로, 도시, 구 이름이 일본어로 바뀌었고 1945년 광복 이후 다시 한국어 이름을 회복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지명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옛날 서울역 앞에 판자촌, 집창촌이 모여 있어 악명 높던 도동과 양동은 동자동으로 바뀌었다. 도시개발도 지명의 변화에 반영된다. 진고개는 옛날 명동에 있던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포장돼 충무로2가로 바뀌었다.
가끔 지명은 바뀌지 않는데 지역이 바뀌기도 한다. 좋은 예가 광화문이다. 조선시대에 광화문은 경복궁 정문으로만 불렸다. 하지만 오늘날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하면 경복궁 정문에서 600m 떨어진 세종대로에 사람들이 모인다. 서울을 배울수록 이런 재밌는 사실들을 여럿 알게 된다.
간혹 혼란스러운 것들도 있다. 바로 서울의 사대문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흥인지문은 공식 명칭인 흥인지문으로도, 속명인 동대문으로도 불린다. 마찬가지로 숭례문을 남대문이라고도 부른다.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별문제가 없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역사도 아니까. 하지만 서울에 갓 온 외국인들은 가령 동대문에 갈 때 이정표를 따라가면 혼란을 겪는다. 왜냐하면 대부분 표지판에 동대문이 아니라 흥인지문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인지문에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은 동대문역이고 바로 건너편 옷 시장도 동대문시장이고…. ‘아니, 문이 동대문과 흥인지문 두 개인가?’ 헷갈릴 수 있다. 왜 흥인지문역, 흥인지문시장이라고 하지 않을까. 이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동대문=흥인지문’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고작 서울 종로에 있는 몇몇 버스정류장에만 친절하게도 ‘동대문역-흥인지문’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 제안하고 싶다. 모든 도로표지판, 지도, 안내도, 지하철 노선도에는 일관된 이름을 사용해 달라는 것이다. 혹여 한국인 독자들이 내 취지를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왜 하나의 문에 동대문과 흥인지문이라는 두 가지 이름이 있는지 이해한다. 그 뜻도 안다. 숭례문에는 예(禮), 흥인지문엔 인(仁)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안다. 물론 안내판이나 가이드북, 인터넷에 두 가지 이름을 병기해 소개해도 좋다. 다만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길을 찾을 때 참고해야 하는 표지판이나 이정표에는 하나의 통일된 이름을 일관되게 써 달라는 것이다. 서울은 세계적인 도시다. 단기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서울의 유적지, 유명한 장소를 각인시키려면 일관된 명칭을 써야 효과적이다. 그래야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이상 동대문을 “이름이 두 개 있던 그 문”이라고 애매하게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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