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박물관서 새 표본 훔친 청년, 플라이낚시에 쓰려고 했다고 실토
5년간 세계 돌며 사건 취재한 저자
희귀한 깃털 둘러싼 검은돈과 아름다움 향한 오랜 탐욕 파헤쳐
“깃털 도둑이라…. 게다가 실화라니. 깃털같이 하찮은 것을 훔쳐서 대체 어디다 쓴다는 걸까?”
그간 ‘옮긴이의 말’을 옮긴 적은 없었다. 한데 이번만큼은 예외로 해야겠다. 이 책을 마주한 느낌을 너무 적확하게 표현했기에. 도대체 이게 뭔지. 왜 굳이 책으로 쓴 건지 가늠이 안 갔다.
‘깃털 도둑’이 다루는 전모도 별거 없다. 2009년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새 표본 299점이 사라졌다. 1년 넘게 지난 뒤 잡힌 범인은 런던왕립음악원 학생인 에드윈 리스트. 절도 행각을 벌인 이유는 어이가 없다. 플라이낚시 끝자락에 매다는 깃털을 갖고 싶어서였다.
여기까지 보면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나 될 만한 ‘황당 에피소드’ 수준일 터. 실제로도 리스트는 당시 19세 청년의 치기와 정신미약을 근거로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모든 게 일단락. 하지만 저자는 이 짤막한 사건에서 뭔가 불편한 냄새를 맡는다. 훔친 새 표본은 어떻게 됐나. 집행유예란 판결은 적절했나. 그리고 뭣보다, 왜 그는 박물관 유리창까지 깨고 들어가 새를 훔쳤을까.
무려 5년 동안 미국과 유럽을 돌며 취재한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스포일러일 테니 자세히 말하긴 그렇다. 다만 순진무구한 어린애 장난으로 여길 건 아니다. 실은 플라이 타이어(fly tier·플라이낚시 제조자)의 세계는 생각보다 저변이 넓다. 이 때문에 희귀한 깃털은 예상보다 큰 ‘돈’과 ‘명성’을 안겨준다. 그리고 밀렵과 밀매라는 짙은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그럼 깃털 탐욕은 일부 ‘덕후’만 해당될까. 실은 18∼19세기엔 훨씬 심했다. 중요한 패션 소재였으니. 화려한 모자 등을 꾸미려 수없이 많은 새들을 죽였다. 결국 여성들이 스스로 동물보호를 천명하며 잦아들긴 했지만, ‘취향’을 위해 동물을 마구잡이로 해친 건 틀림없다.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은)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어느 범죄 논픽션보다 독특하다. 상대적으로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엄청난 통찰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난민 시민운동가 출신인 저자가 전문도 아닌 분야를 파헤친 열정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 더. 이건 깃털과 서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코끼리 상아나 코뿔소 뿔, 호랑이 눈썹…. 우리도 그리 떳떳하진 않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이기적이고 잔인했던 게 어제오늘 일이겠느냐만. 이 죗값을 어떻게 치를지. 괜히 더 울적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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