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이 10일 당정청 민생현안회의 시작 전에 나눈 비공식 대화가 고스란히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두 사람은 방송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관료들이 말을 덜 듣는다”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 “정부 출범 2주년이 아니고 4주년 같다”며 관료 조직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김 실장은 어제 고위 당정청 협의에선 “활기차고 적극적인 공직문화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관료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비판하는 여당과 청와대 핵심 인사의 밀담에는 공무원들을 채찍질과 기강 잡기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식이 담겨 있어 씁쓸하다. 청와대와 여당이 모든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내각의 자율성은 무시해온 ‘청와대 정부’ 행태, 그리고 전 정권 주요 정책 관련자들에 대한 집요한 사법처리로 공무원들을 납작 엎드리게 한 행태에 대한 반성은 없이 공무원들만 비판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지난 2년간 정부 쇄신을 내세워 수많은 혁신 과제를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가 아직까지 공무원 탓만 하는 것도 한심한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정책실장이 “2주년 아닌 4주년 같다”고 푸념할 정도라면 지금 우리 관료사회의 현주소가 어떤지 되돌아봐야 한다. 관료사회는 안정과 현상 유지를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때론 사회의 급진적 쏠림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완강하게 기득권만 지키려는 관료들의 무사안일, 나아가 집단적 사보타주 징후가 정권 3년 차에 벌써 나타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규제 혁신이 시급한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규제와 철밥통을 움켜쥔 채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경쟁에서 무한정 뒤처지고 말 것이다. 관료들은 앞으로 3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결과 국가경쟁력은 수십 년 뒤처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관료 탓을 하면서 인사 불이익을 주는 것만으로 공무원 조직의 체질을 바꿀 수는 없다. 내각에 자율권은 주지 않고 정권의 어젠다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공무원 조직을 격하시킨 측면은 없었는지 자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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