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청와대에서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슬리 사무총장을 접견해 대북 식량 문제 및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자리는 당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나서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받겠다고 나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약 1시간 동안 비슬리 사무총장을 만나 대북 식량 상황 등을 공유한 뒤 북한 인도적 식량 지원에 대해서 앞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특히 비슬리 사무총장이 “현재 북한 내 일일 배급량이 심각하게 낮은 수준으로 파악됐다”면서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한 인도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자 문 대통령은 공감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우리가 어려웠을 때 WFP로부터 도움받은 것을 잊지 않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비슬리 사무총장을 만나 “인도주의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WFP의 기본 입장에 공감한다”면서 영·유아, 임산부 등 대상 영양지원 사업에 대한 공여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비슬리 사무총장을 접견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식량상황이 중요한 의제이며 우리는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내부적 논의를 진행해 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의 시기와 규모,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대북 식량 지원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북한도 지원을 바라고 있는 상황이지만 잇따른 도발에 아무래도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13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대통령은 식량 지원이 국민적 합의를 얻어야 하고 국회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9일) 대담에서 말했다”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보자는 의미에서 요청했고 그게 이뤄져야 다음 단계를 상상할 수 있다. 긴 호흡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가 신중해진 것은 북한의 ‘엇박자’와도 무관치 않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12일 “우리 겨레의 요구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몇 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놓고 마치 북남관계의 큰 진전이나 이룩될 것처럼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동족에 대한 예의와 도리도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이번에 지원을 할 거면 ‘통 크게, 제대로 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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