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13일 수석·보좌관회의 메시지를 두고 여권에서는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유세 같다”는 말이 나왔다. 그만큼 문 대통령이 집권 3년 차 첫 수보회의 발언으로는 이례적으로 “촛불 이전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며 자유한국당을 작심하고 비판했다는 것.
여기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전 비서실장까지 문 대통령 발언 직후 잇따라 가세하며 제1야당 때리기에 힘을 보탰다. 임 전 실장이 1월 퇴임 후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낸 건 극히 이례적이다. 한 여권 인사는 “문 대통령 발언을 시작으로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이 잇따라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야당 대응에 대해 정권 핵심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치 전선이 급격하게 가팔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 文 작심 비판에 전·현직 비서실장도 가세
문 대통령은 이날 수보회의에서 “반칙과 특권, 편법과 탈법이 당연시되어 온 불공정의 익숙함을 바로잡지 않고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기대할 수 없다”며 “낡은 질서 속의 익숙함과 단호히 결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폐 청산,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이어 문 대통령은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며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과거에 머물러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도 했다. 사실상 한국당을 겨냥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의 작심 비판이 나온 뒤 노영민 실장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색깔론으로 폄훼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며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국민 통합과 민생 안정을 위해 뚜벅뚜벅 당당히 걸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임 전 실장도 한국당을 향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진화하는데 아직도 좌파, 우파 타령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현안에 대해 노 실장과 임 전 실장이 같은 날 메시지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별도의 사전 조율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두 사람이 모두 한국당의 발언과 공세가 용인할 수 있는 수위를 넘었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여야 모두 극단적 지지층 결집 나서나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현직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일제히 ‘낡은 이념론’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결국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을 고려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민생 경제 악화 등을 근거로 ‘정권 심판론’을 앞세울 것이 확실한데 그때까지 경제 상황이 나아진다고 장담하기 힘들다”며 “결국 여권은 ‘낡은 정치 대 미래 정치’의 구도로 한국당에 맞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외 강경 투쟁 이후 한국당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민주당은 38.7%, 한국당은 34.4%로 두 당의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2.2%포인트) 내로 집계됐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강공 드라이브에 여야의 대치는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더욱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낡은 이념의 잣대를 버리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를 지양하자는 대통령이 정작 사실을 왜곡해 가면서 야당 공격에 가세하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고 성토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함께한 다른 야당들도 청와대의 대야 강경 메시지에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문제의 진원이 대통령 자신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은 외면한 채 철저히 ‘남 탓’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청와대가 솔선수범해 건설적인 정국 정상화 방안을 내놓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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