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57〉첨단미군을 막은 옛 요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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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미국 패튼 전차군단이 승승장구하며 라인강을 향해 진격할 때 진격로 위에 메스(Metz)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방, 독일과의 국경에 위치한 모젤강에 설립된 도시다. 1552년에 프랑스령이 됐고 다시 독일 영토가 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 환원됐다. 이 도시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건축가 세바스티앵 보방(1633∼1707)이 세운 요새로 보호되고 있었다. 대포가 발달하면서 과거의 성채로는 포탄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자 소위 별 모양 요새(star fort)라 불리는 설계와 공법이 등장했다. 그 기술의 정점에 보방이 있었다. 보방은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국경의 전통적인 요충과 항구를 요새화했다. 그가 세운 요새만 300개에 달한다. 지금도 프랑스에는 12개의 요새가 남아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의 무덤은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파리의 앵발리드 성당에 있다.

아무리 걸작이라 해도 18세기에 세운 요새(일부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에 보강)가 미군 중 제일 강하고, 첨단 병기로 무장한 군단을 괴롭힐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패튼이 제일 믿었던,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워커 장군이 지휘하는 20군단이 메스 공격을 맡았다. 독일군 수비대는 형편없는 수준의 부대였음에도 20군단의 맹공을 버텨냈다. 성채의 벽이 단단해서 대포로 직격해도 무너지지 않았다.

미군은 마치 중세의 공성전을 하듯 보병부대를 돌격시켜 성을 공략하기도 하고, 여러 차례 강력한 일제공격을 감행했다. 며칠이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공격은 무려 3개월을 끌었고 막대한 희생자를 냈다. 메스 전투는 패튼에게 치욕이 되었다. 자신이 지은 요새가 독일군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보방이 알았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싶기는 하지만, 전쟁에는 이런 명분적 사고가 아니라 실리적 사고가 필요하다. 손자도 말했듯이 전쟁에서 최고의 수단은 남의 것을 빼앗아 사용하는 것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세계문화유산#요새#실리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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