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주애진]아파트 중도금 연체 권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방배 그랑자이’ 아파트의 본보기집. GS건설 제공
‘방배 그랑자이’ 아파트의 본보기집. GS건설 제공
주애진 산업2부 기자
주애진 산업2부 기자
“대출이 막혀도 중도금을 연체하면 된다는데 정말인가요?”

이달 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 그랑자이’ 아파트의 청약을 앞두고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중도금 연체 지원’이 관심사였다. 이 단지는 전 가구가 분양가 9억 원을 초과해 중도금 대출이 안 된다. 그 대신 중도금을 처음 세 번만 납부하면 나머지 세 번은 연체해도 계약을 해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비청약자들은 반신반의했다. 이들은 “중도금을 연체하면 신용등급 떨어지는 것 아니냐,”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없을까” 등 궁금함을 쏟아냈다.

시공사인 GS건설이 내놓은 전략은 이랬다. 처음 세 번만 중도금을 잘 내면 나머지는 연체해도 계약을 유지하고 연체 이자도 연 5%로 낮춰주는 것. 일반적으로는 3회 연속 연체하면 계약이 해지된다. 기존 중도금 대출의 이자율이 4%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도금 대출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대출보다 더 편하다. 까다로운 자격 요건 등을 따질 필요가 없어서다. 김범건 GS건설 분양소장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각종 규제를 감안하면 대출보다 더 많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고 분양주체와 당첨자 간 사적 계약이라 신용상의 불이익도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지원에 대해 9억 원 초과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막는 정부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라고 비판한다. 국토교통부도 분양 관계자에게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등 예의주시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오죽하면 건설사가 나서서 중도금을 연체하라고 광고하는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강남권의 새 아파트 분양가는 3.3m² 기준 4500만 원을 넘어섰다. 강남에서 분양가 9억 원 이하인 아파트가 자취를 감췄고 마포구, 동대문구 등 강북권 입지 좋은 단지도 9억 원이 넘는 사례가 늘고 있다. GS건설의 전략 역시 강남에 진입하고 싶은 30, 40대 고소득층이 대출 때문에 주저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최근 ‘줍줍’(줍고 또 줍는다는 뜻)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무순위 청약의 인기도 부동산 규제의 산물이다. 어렵게 청약에 당첨되고도 대출이 안 돼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무순위 청약 물량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현금부자들 외에 까다로운 청약 조건 때문에 당첨을 기대하기 힘든 실수요자들도 무순위 청약으로 모여들었다. 뒤늦게 국토부는 9일 현금부자들의 아파트 쇼핑을 막겠다며 무순위 청약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어떤 규제든 지나치게 옭아매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부가 무순위 청약을 차단한다는 소식에 “대출을 이렇게 조이지 않았더라면 줍줍은 처음부터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한 누리꾼의 지적을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주애진 산업2부 기자 jaj@donga.com
#중도금 연체#중도금 대출#줍줍#부동산 규제#무순위 청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