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앨범(사진)을 워너 클래식스에서 내놓았다. 알렉산드르 베데르니코프 지휘 BBC 교향악단 협연. 그라머폰지 ‘편집자의 선택’을 받은 쇼팽 전주곡집 이후 4년 만이며, 협주곡 음반으로는 첫 녹음이다. 스승이자 후원자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연주한, 네 손을 위한 ‘교향적 무곡’도 함께 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은 피아노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다. 당대 최고 기교파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테크닉이 남김없이 녹아들었고, 길고 풍성한 멜로디와 이 작곡가 특유의 감상성이 짙게 발휘되어 있다.
임동혁은 10대 때 선보인 지적이고 냉철한 면모를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 작품의 서정적인 면과 즉물적인 면을 독창적으로 해석해 서로 교묘하게 섞여들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무기다. 그런 점에서 스승인 아르헤리치를 닮아 있다. 이 음반에서도 그렇다.
첫 악장의 노래하는 듯한 두 번째 주제에서 그는 속도를 확 늦춘다. 개성 강한 임동혁의 루바토(왼손 리듬을 오른손과 다르게 자유롭게 펼쳐내는 것)가 정밀하게 들여다보인다. 강약 차이는 줄여 오히려 묘한 긴장을 유발한다. 이지적이면서도 현악부와 풍성한 대화가 살아나면서 라흐마니노프의 감상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3악장의 느린 주제도 마찬가지다.
이 곡에서 빠른 부분은 양손을 쫙 펼쳐 거의 모든 손가락이 동시에 건반을 짚으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1악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A음을 옥타브로 겹쳐 셋잇단음표로 치는 부분부터 ‘절정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손목의 ‘바운스’가 귀에 짝 붙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녹음은 마이크를 피아노와 악단에 가까이 붙여 확대경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저음이 강해 차가운 터치의 날이 뭉툭해졌지만 새로운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다
후반부의 ‘교향적 무곡’은 7일 임동혁과 아르헤리치가 예술의전당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 인 서울’ 무대에서 선보여 찬사를 받은 그 곡이다. 아르헤리치는 지난해 독일 함부르크에서 임동혁과 이 곡을 함께 친 뒤 ‘내 생애 최고의 교향적 무곡 연주는 리미첸코(아르헤리치가 임동혁을 부르는 애칭)와 함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음반은 7일 임동혁과 아르헤리치의 공연을 맞아 한국에서 먼저 발매됐다. 전 세계 발매는 9월 중순. 지난해 다닐 트리포노프, 예브게니 수드빈, 데니스 마추예프 등이 이 협주곡의 만만치 않은 경쟁 앨범을 내놓은 바 있다. 임동혁의 새 앨범은 이들 사이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화제반이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