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강성명]우울한 스승의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강성명·부산경남취재본부
강성명·부산경남취재본부
“학생들에게 늘 부당한 일에는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현실의 벽은 참 높네요.”

A 교사는 2년 넘게 무거운 마음을 짓누르면서 출근하고 있다. 20여 명의 동료 교사도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걸까.

부산의 한 사립고교 교사들이 B 교장과 불편한 사이가 된 건 2017년 3월부터다. A 교사는 14일 “평교사 시절의 수업 태도 등을 봤을 때 B 씨가 교장이 되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여론이 많아 여러 교사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는 교장이 된 이후부터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의 불편함은 부산시교육청으로 넘어가 감사실에 접수됐다.

시교육청 감사관실은 3월 “B 교장에 대해 특정 감사를 벌인 결과 교직원에 대한 갑질 행위, 근무지 무단 이탈, 금연구역인 학교 내 흡연 등 성실 의무와 품위 유지 의무, 초·중등교육법, 학교규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돼 중징계할 것을 학교법인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평소 B 교장이 “능력 없으면 빨리 나가라”, “아프면 회사를 그만두고 병원에나 가라”, “일하다가 안 쓰러진다”, “죽으면 요즘 공상 잘 쳐준다”는 등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B 교장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재심을 요청했고 학교법인은 최종 결론이 나기 전까지 징계를 미룬다는 방침이다. 교장과 교사들의 ‘불편한 동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A 교사는 “감사 결과만 나오면 학교가 정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교사들의 더 큰 걱정은 과연 징계가 제대로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사립 학교법인이 교육청의 징계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으면 최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낸다는 조항은 있지만 징계를 어떤 식으로 할지는 법인 재량에 달렸다.

가령 ‘정직 1개월’을 방학 동안 내리는 방법이 가능하다. 교사들은 중징계 요구까지 받은 교장을 직무에서 배제하지 않는 학교법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9일 법인을 소유한 부산의 한 기업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최근 전국 교원 54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4%가 ‘최근 1, 2년 사이에 교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2009년 조사 당시는 같은 대답 비율은 55.3%였다. 교권 추락이 교사들의 자승자박(自繩自縛)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 곁엔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참스승이 많다. 지금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시대는 아닐지라도 교사가 최소한 인격적 대우도 받지 못하는 이런 상황만큼은 방치해선 안 된다.

강성명·부산경남취재본부 smkang@donga.com
#스승의 날#교권 침해#교권 추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