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사거리에서 어린이 5명이 타고 있던 통학차량이 다른 차량과 충돌해 어린이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이날 오후 8시쯤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앞 사거리에서 일어났다. 김모 씨(22)가 몰던 어린이 축구클럽 통학차량(스타렉스)이 지모 씨(47·여)가 운전대를 잡은 카니발 차량과 충돌했다. 통학차량은 12시 방향으로, 카니발 차량은 3시 방향으로 각각 직진 중이었다.
이 사고로 통학차량에 타고 있던 김모 군(7)과 정모 군(7)이 숨지고 또 다른 정모 군(7)은 크게 다쳐 중태다. 나머지 어린이 2명과 사고 차량 운전자 2명도 다쳤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인천 송도소방서 구급대원은 “통학차량 안에는 안전띠를 매지 않아 자리에서 벗어난 아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통학차량 운전자 김 씨의 신호 위반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넘어가기 전 노란불일 때 교차로에 진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수경찰서는 김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스포츠클럽 통학차량
이날 사고가 난 노란색 통학차량은 겉으로 보기엔 보통의 어린이 통학차량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스타렉스 차량은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차량에 해당하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차량은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어린이집, 학원, 체육시설에서 운행하는 차량이다. 그런데 이때 말하는 체육시설은 체육시설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체육도장’만 해당한다. 검도, 권투, 레슬링, 우슈, 유도, 태권도 등 6개 종목 도장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다니는 수영교실이나 농구·축구클럽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15일 사고가 난 축구클럽 통학차량도 법적으로는 어린이 통학차량이 아니다.
도로교통법은 일반 차량에 비해 어린이 통학차량 관련 안전조치 의무를 보다 엄격히 정해놓았다. 어린이 통학차량에는 운전자 외에 성인 보호자가 반드시 동승해야 한다. 2013년 충북 청주에서 자신이 다니던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치여 숨진 김세림 양(당시 3세) 사고를 계기로 모든 통학차량에 성인 보호자가 동승하도록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일명 ‘세림이법’)이 2017년 3월부터 시행됐다. 지난달 17일부터는 모든 어린이 통학차량에 ‘하차 확인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또 통학차량 운영자와 운전자는 2년마다 안전교육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축구클럽 통학차량은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해당하지 않아 이 같은 의무사항들을 따르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축구클럽 통학차량에 운전자 김 씨 말고는 동승한 성인 보호자가 없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축구클럽 통학차량은 일반 자가용 차량과 똑같이 취급되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축구클럽 등의 통학차량도 어린이집 통학차량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있었다. ‘세림이법’ 시행을 한 달 앞둔 2017년 2월 전남 함평에서 8세 여자아이가 합기도장 통학차량에서 내리던 중 차 문에 옷이 낀 채 끌려가다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6개 도장만 체육시설로 보는 체육시설법 시행규칙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경찰청과 함께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도로교통법 적용을 받는 체육도장에 합기도 종목만 추가하기로 결정했고 법제처가 심사 중이다.
○ 문체부, 체육도장 범위 확대에 난색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8월 도로교통법상 어린이집 통학차량으로 지정되지 않은 체육시설 통학차량이 안전사고를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문체부에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체육시설의 통학차량 범위를 넓히는 데 소극적이다.
윤태욱 문체부 스포츠산업과장은 “체육도장의 범위를 더 확대하면 통학차량 안전뿐 아니라 위생이나 시설안전 등 다른 규제도 같이 늘어나게 된다”며 체육도장의 범위 확대에 난색을 표했다. 같은 과 김경래 사무관도 “이번 사고는 신호 위반이 직접적 원인이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공을 경찰로 넘겼다.
2016년 7월(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과 2017년 4월(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 어린이집 통학차량의 범위를 넓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아직도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런 입법 공백 속에 15일 인천에서 발생한 사고처럼 통학차량 사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무늬만 통학차량’이 전국에서 운행 중이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번 사고의 원인이 신호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이 통학차량에는 반드시 성인 보호자가 동승해 안전조치를 해주어야 한다”며 “많은 어린이가 다니는 스포츠클럽이 체육시설에서 빠져 있다고 해서 안전문제가 방치되는 건 명백한 허점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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