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빅데이터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애덤 태너 지음·김재용 외 옮김/424쪽·2만 원·따비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약국들은 전산망으로 연결되었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처방전과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수많은 업무에서 크게 손을 덜게 되었다.
이윽고 새로운 사업 형태가 생겼다. 처방전 정보를 수집해 제약업계에 파는 데이터 업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 업체들은 약국이나 병원이 정부 보험기관이나 민간 보험회사에 자료를 전송하는 업무를 대행한다. 데이터는 모이고 쌓여 의료 부문의 빅데이터를 만들어낸다. 데이터는 제약업체를 비롯한 고객들에게 팔려 나간다.
이 빅데이터는 의학의 진보에 기여할 수도 있다. 데이터 업체들이 내세우는 명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모인 데이터가 실제 공중 보건에 기여한 사례는 ‘측은할 정도로’ 적다. 그 대신 이 방대한 정보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로 의사들의 처방 내용을 파악해 제약회사가 이윤을 늘리도록 하는 데 쓰인다.
일반 환자가 성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데이터는 개인 정보를 삭제한 채 제공된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삭제된 정보를 복원하는 일도 간단해지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 기관이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해 건강정보를 빼내는 일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실제 1970년대 초 닉슨 행정부가 이런 일을 시도했다.
여기까지는 미국 얘기다. 그런데 저자는 14개 장 중 한 장을 온전히 한국의 사례에 할애한다. 2013년 한국의 의약 관련 단체들이 설립한 기관이 연간 30만 달러(약 3억5700만 원)를 받고 다국적 데이터 업체에 환자들의 정보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환자들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집단소송이 제기됐고,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빅데이터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도,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의료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과 관련된 미래의 여러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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