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간) 세계 3대 ‘오일허브’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만의 석유화학기지인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3조6000억 원이 투자된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석유화학 공장 준공식은 한국계 성악가의 한미 양국 국가 독창으로 시작했다. 행사장 천막을 때리는 장대비를 뚫고 전해지는 목소리는 한미 경제 동맹의 상징으로 떠오른 공장의 무게감을 전하는 듯 깊고 묵직했다.
7년간 이 사업에 매달린 롯데 관계자들의 표정은 숙연했다. 준공식에 참석한 이병희 롯데그룹 상무는 “애국가를 듣는 순간 울컥했다”고 말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금까지 들어본 국가 중 가장 훌륭했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성악가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공장은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에 건설한 최초의 대규모 석유화학 플랜트다. 미국의 풍부한 셰일가스와 한국의 축적된 석유화학 기술이 없었다면 문을 열지 못했다. 롯데는 공장 건설을 위해 20여 개의 한국 기업을 참여시키고 울산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한국인 기술자와 한국에서 만든 설비를 들여왔다. 준공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공장 발전은 한미 동맹 발전의 증거가 될 것”이라며 연설을 마치자 300여 명의 청중은 기립박수로 호응했다.
롯데는 셰일가스 부산물인 에탄을 200km 떨어진 저장소에서 가스관을 통해 이 공장으로 가져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을 만든다. 기존의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로 만든 제품 가격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바다를 건너오는 운송비만 없다면 미국산 셰일가스 제품을 당해낼 회사가 많지 않을 것이다. 원가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들부터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이 공장의 첫 생산품이 한국 울산공장에 도착했다. 한국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가스 혁명’의 본격적인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은 셰일가스 덕분에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도약했고,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셰일혁명’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한 자유무역과 다자안보 체제에서 발을 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新)고립주의 노선의 핵심 동력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지정학 및 안보 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에서 “미국이 더는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면 미국과 세계의 운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세계에서 오지랖을 휘날리며 오만 가지 일을 다 처리해 주는 미국이 빠져 버리면 나머지 나라들은 각자도생해야 한다”며 ‘미국 없는 세계의 무질서’를 예상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한국은 세계 5대 석유 수입국이자 세계 7대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경제적 성공을 달성했다”며 “미국은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뗀다.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상황을 단순화한 일방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신중한 정책 담당자들에겐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는 섬뜩한 경고다.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 공장 준공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백악관까지 초대하며 애정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간) 루이지애나주 헥베리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을 직접 찾았다. 그는 연단에 서서 “여러분은 미국 에너지 독립의 미래를 구축해 우리나라를 부강하고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독립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객석에서 우렁찬 함성과 박수가 나왔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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