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말리 홀트 홀트복지회 이사장… 고아-장애인 위한 60년 ‘代이은 헌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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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이 1998년 중증장애인 시설인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제공
생전의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이 1998년 중증장애인 시설인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아동을 돌보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제공
“아임 프롬 홀트(I‘m from Holt·저는 홀트 출신입니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말리 홀트 이사장(사진)은 생전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늘 이렇게 답했다. 미국에서 25년, 한국에서 약 60년 살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국적이 아닌 ‘고아와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둔 것이다. 홀트 이사장이 17일 별세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이날 “강인한 정신력으로 골수암을 견뎌내며 열정적으로 봉사의 삶을 살아왔지만 오랜 투병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향년 84세.

홀트 이사장은 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 해리 홀트와 버사 홀트 부부의 딸이다. 홀트 부부는 1955년, 6·25전쟁이 남긴 한국 혼혈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뒤 입양 사업을 시작했다. 6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한국인 고아 8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키웠다.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홀트아동복지회를 세웠다.

이런 부부의 딸인 홀트 이사장에게 가정을 잃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운명이었다. 홀트 이사장은 간호전문대를 갓 졸업한 21세 때인 1956년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에 왔다. 4년간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오리건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다시 한국에 와서 지금껏 아동 복지를 위한 한길을 걸었다.

홀트 이사장은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지상 최대의 선물은 마음껏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살았다. 그의 사명감은 새로 찾은 가정에서 훌륭하게 자란 아이들로 보답을 받았다. 경기 고양시 자신의 집 거실에 걸린 ‘백골난망’ 액자는 한 고아가 30년 뒤 찾아와 “버림받아 죽었을지도 모를 저를 거둬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줬다. 큰 은혜를 입었다”며 준 선물이다.

한국이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그 장본인이 홀트아동복지회인 양 비난을 받을 때나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면 홀트 이사장은 대단히 아쉬워했고 서운해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사랑이 참 많고 그 사랑을 알려줄 도구로 내가 쓰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사명을 실천해 나갔다.

특히 장애아에게 마음이 더 갔던 그는 뇌성마비를 비롯해 특수재활운동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56세이던 1991년 미국 북콜로라도주립대 특수교육과에서 재활상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팔순을 넘기면서도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중증장애인들과 생활하며 직접 돌봤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장애아의 어머니’ ‘말리 언니’ ‘할머니’ ‘입양의 대모’로 불린 그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21일 오전 7시. 02-2227-7550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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