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통유리 창으로 회색 하늘이 캔버스처럼 눈에 들어왔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점묘화라도 그리려는 듯. 하늘이 우리 쪽으로 투명한 붓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진갈색 커피 잔을 두고 마주 앉은 이는 싱어송라이터 김현철(50). 1998년 그의 6집에 실린 곡이 떠올랐다.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
3분 전 그가 건넨 LG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아 넣은 참이다. 음악가가 사용하는 거라고는 믿기 힘든 평범한 모델. 자신의 스마트폰에 무선 연결하더니 콩나물 같은 것 두 개를 내밀었다. 재생. 이어폰 안에 음악이 물결 치고 세상 밖엔 침묵이 흘렀다. 면전에서 여는 ‘일대일 신작 감상회’가 민망한지 기자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그가 딴청이다.
“와, 이거, 꼭 김현철 1집 노래 같은데요?”
잠시 후 침묵을 깬 기자의 인상비평에 김현철이 얼굴색을 밝히며 뜻밖의 말로 입을 뗐다.
“그래요? 실은 ‘그 기사’ 때문에 음악을 다시 시작한 거예요. 13년 만에요. 2009년엔 갖고 있던 악기까지 처분했죠. 음악이 싫어지면 그럴 수 있어요. 악기 쳐다보기도 지긋지긋해지면. 평생 안 할 각오로.”
그 기사…? 그러고 보니 기자는 재작년, 이런 기사를 쓰며 김현철에게 전화했었다. “쿨하게 돌아왔네… 그 시절 ‘시티팝’”(본보 2017년 8월 10일자 A23면)
“시티팝(city pop)이 다시 붐이래요. 김현철, ‘빛과 소금’의 레코드판을 젊은이들이 고가에 구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 (1집 ‘오랜만에’ 중)
“시… 무슨 팝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시큰둥하게 대답한 그의 생각은 기사가 나온 뒤 바뀌었다. 음악계에서 김현철에게 궁금한 게 많아졌다. ‘어떻게 시티팝을 한 거예요?’ ‘좋은 시티팝 있는데 들어볼래요?’…. 그에겐 정말 낯선 단어였다. ‘1970, 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청량감 있는 팝 음악? 난 그저 미국 재즈와 록에서 영감 받고 만들었던 것뿐인데….’
“하루는 일본에 사는 후배가 전화했어요. ‘형, 형 노래가 그렇게 유명해? 일본 DJ가 형 음악을 안대. 항상 형 노래를 튼대.’ 묘하게 설렜어요. 30년 전 제가 만들던 스타일이 지금 그대로 다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랜만에 자신의 1집 음반을 들어봤다. 좋다는 국내외 시티팝 음반도 이것저것…. ‘아, 이런 재미에 음악 했지.’ 혈관이 팽창하는 느낌.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신시사이저, 노트북 컴퓨터, 스피커를 새로 샀다. 음악세계에 봄이 돌아왔다. 쩍 갈라진 창작의 논도랑에 13년 만에 음표의 냇물이 굽이쳐 들어왔다. 재미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광인처럼 작사, 작곡, 연주에 매달렸다. 1989년, 국내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베테랑 연주자들을 지휘하던 약관의 천재 김현철을 김현철이 다시 만났다.
23일 나오는 김현철의 새 음반은 ‘10집―프리뷰’다. 가을에 낼 10집 정규앨범에서 5곡을 빼 미리 발표하는 미니앨범. 김현철의 놀라운 회춘 이야기를 듣다 다시 이어폰을 끼니 하나둘 가로등을 밝히는 도시의 환상이 보였다. 연인과 떨어진 괴로움을 잊으려 드라이브하는 이가….
○ ‘나를 데리고 가네. 5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춘천 가는 기차’ 중)
‘It‘s alright! 하나둘씩 들어오는 색색깔의 불빛, Street light∼.’
감각적 가사가 상쾌한 당김음을 집어타고 질주. 흘깃 그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니 제목이 ‘Drive’다. 작년 10월, 음악에 다시 미쳐 13년 만에 처음 만든 곡이란다. “마침내 맘에 드는 자화상을 그려낸 화가의 기분 알아요?”
1993년생 R&B 가수 죠지와 함께 불렀다. 역시 본보 기사가 영감을 준 네이버문화재단의 한국 시티팝 재해석 프로젝트, ‘디깅클럽서울’ 덕이다. 여기서 발표한 죠지의 ‘오랜만에’(원곡 1989년 김현철 1집) 리메이크가 지난 가을 젊은 층에 인기를 얻으며 둘은 한 무대에도 섰다.
“‘Drive’ 가사는 진짜 드라이브 하면서 썼어요.”
감히 5월을 상상할 만큼 포근한 겨울날이었다. 죠지를 조수석에 앉히고 강변북로를 탔다. 경기 양평까지 다녀오며 ‘형, 이런 가사 어때요?’ ‘야, 이런 구절은 어떠니’를 주고받았다. 한남대교 남단 둔치에 앉아 한숨 돌릴 때쯤 두 사람 손에 ‘Drive’의 완성 가사가 들려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차에서 참 많이 썼어요. ‘춘천 가는 기차’(1집)부터 ‘Wonderful Radio’(9집)까지…. 차가 움직이면 풍경도 움직이죠. 감정도요.”
1집의 ‘동네’나 ‘오랜만에’만큼 상큼한 ‘Drive’ 뒤로 다른 신곡 ‘Tonight is the Night’가 흐른다. 이번엔 찬란한 우울의 발라드. 1993년생 가수 쏠의 음성이 네온사인 같다. 이번엔 ‘그대 안의 블루’(1992년 영화음악) 때 김현철의 환상이 고개를 내민다.
“일부러 1970, 80년대에 유행한 야마하 CS-80 신시사이저 솔로를 넣었어요.”
○ ‘거리 거리마다 나를 믿어왔고 내가 믿어가야만 하는 사람들’ (‘동네’ 중)
“스무 살 때 감성이 이젠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되더라고요. 정말 밤낮 악기를 못 놓겠더라고요. ‘창작은 고통이다’란 명제를 재미가 이기더군요.”
오랜 ‘절필’의 이유 중 하나로 그는 “돌아보면 손발 오그라드는 가사”를 꼽는다. 이번엔 김현철이 스마트폰 메모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창작열이 오른 뒤 수시로 끼적인 글들. ‘이영훈에 대하여’ ‘꽃은 허무’ ‘스물두 살의 여름’…. 레고 블록처럼 흩어놓은 단상들 사이에서 새 노랫말의 꽃이 피었다. 돌아보면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벼락처럼 내려온 천재였다. 홍익대 1학년 때 낸 1집에 ‘춘천 가는 기차’ ‘동네’ ‘형’ ‘오랜만에’ 등 명곡이 빼곡했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이고 그 나이에 프로듀서까지 손수 맡은 것은 계보가 살벌하던 당시 가요계에 반역 같은 혁명이었다. 요절한 유재하(1962∼1987)의 빈자리라도 채우려는 듯 김현철은 뛰어난 가수로, 작곡가로, 영화 음악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김현철은 가을에 낼 10집을 두 장짜리 LP에 담아내려 한다. 재미에 미쳐 만든 수십 곡 중 옥구슬만 추려서. 김현철은 “나 같은 색깔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요즘 너무 주눅 든 것 같다. 나라도 끝내면 안 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새 친구 사귄 아이처럼 천진하게 머릿속 계획을 털어놓았다.
“아리랑을 변주한 50분짜리 교향곡을 만들 건데, 헤비메탈부터 재즈까지 막 섞어서…. 그리고 또 뭐가 있냐면….”
그는 마침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그는 “음악에 다시 미치지 않았다면 30주년도 그냥 지나갈 뻔했다”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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