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낮 12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이 끝난 직후 참배객들이 묘역을 둘러보며 5월 영령을 추모했다. 참배객 가운데 ‘한일학생포럼@한국’ 회원 30여 명이 눈길을 끌었다. ‘한일학생포럼@한국’은 언론인을 꿈꾸는 한일 대학생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이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국제사회에 처음 알린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61) 전 아사히신문 기자다.
회원들은 올해 모임 주제를 ‘한국의 민주주의를 배운다’로 정하고 17일부터 나흘간 5·18민주화운동 사적지와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우에무라 씨와 학생들은 ‘5월의 신부’로 불리는 고 최미애 씨 묘 앞에서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했다. 최 씨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북구 중흥동 집에서 고교 교사인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묘역에는 하얀 면사포를 쓴 웨딩드레스 차림의 결혼식 사진이 놓여 있었다.
학생들은 5·18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안타까워했다.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에 다니는 니시다 유리(西田有里·24·여) 씨는 내년에 아사히신문에 입사할 예정이다. 그는 “39년 전 희생된 사람의 이름을 되새기며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기념식 참석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외국인 참배객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들어 묘역을 찾은 외국인 참배객은 2500여 명으로 집계됐다. 기념식이 열린 이날에만 외국인 350명이 참배했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은 미국 일본 캐나다 등 9개국 23개 지역에서 개최됐다.
국내에서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이날 하루 동안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은 7만 명이었다. 그동안 기념식 당일 참배객이 4만∼5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는 크게 늘었다.
이날 5·18 묘역을 참배한 월남 참전유공자 장광선 씨(71)는 “인천에 살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국립5·18민주묘지를 찾고 있다”며 “민주화를 위해 앞장선 유공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사무소 측은 최근 5·18민주화운동 진실 규명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배객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데다 올해는 주말에 기념식이 열린 것도 참배객 증가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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