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위기에 처한 노후화된 아파트가 서울 도심 곳곳에 방치돼 있어 대형 사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전문가와 함께 지은 지 39년 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를 점검한 결과 벽면이 갈라져 녹슨 철근이 드러나고 복도 천장이 주저앉는 등 건물은 붕괴 전조(어떤 일이 생길 기미)를 보였다. 이 아파트는 2년 전 시설물 안전진단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불량)을 받았지만 여전히 54가구가 거주 중이다.
이곳처럼 붕괴 위험이 있어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되는 D등급, E등급 판정을 받은 아파트가 서울 시내에만 53개 동에 이른다. 이 중 10여 년 전에 D등급을 받은 상당수 아파트는 사실상 붕괴 직전의 E등급과 다름없는 상태다. D·E등급 아파트는 관악·영등포·구로구 등에 몰려 있다. 콘크리트 벽이 잠자는 사이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를 낡은 아파트에는 주로 홀몸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 취약계층이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런데 관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재건축조합 등이 있는 사유재산(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노후화된 아파트 관리에 소극적이다. 현행법상 정밀안전진단 결과 E등급을 받은 건축물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사용 금지, 퇴거(물러감), 철거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의 15층 규모 오피스텔에서 붕괴 우려가 제기돼 입주자들이 퇴거 명령에 따라 대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에서는 이주비, 철거비 등의 예산 부담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건축물 안전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주민들의 생명이 달린 문제다. 안전점검은 해놨으니 보수, 관리와 철거는 소유주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선 안 된다. 지난해 서울 용산 상가 건물 붕괴, 상도동 유치원 건물 붕괴 등이 연이어 발생했는데도 언제 붕괴될지 모를 노후 아파트를 방치한다는 것은 ㉡안전불감증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전국 건축물의 37%가 준공한 지 30년이 넘어 노후화됐고, 서울은 이 비중이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이제라도 총체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한편으로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 건물에 대해서는 강제 보강, 개축(고쳐서 쌓음) 등의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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