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53)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탁월하게 그린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구성된 ‘악의 3부작’으로 “선이 굵은”, “스릴러에 특화된”, “남성적인”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3년 만에 펴낸 신작 ‘진이, 지니’(은행나무·1만4000원)는 결이 다르다. 선한 본성이 경쾌하게 이야기를 이끈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사옥에서 21일 만난 그는 “‘진이, 지니’는 데뷔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와 두 번째 작품 ‘내 심장을 쏴라’에 이은 ‘자유의지 3부작’ 완결편에 가깝다”고 했다.
“데뷔 초 작품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의지대로 삶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등장하죠. 이번에는 죽음 직전의 자유 의지를 들여다봤어요.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삶의 태도를 선택하며 배우고 성장합니다.”
주인공은 사육사 이진이와 영장류인 보노보 지니, 그리고 백수 김민주. 교통사고 직후 지니의 몸으로 살게 된 이진이의 나흘간 여정이 판타지 모험극처럼 펼쳐진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도움으로 일본과 독일을 누비며 영장류를 취재했다.
“원래 쓰려던 이야기가 따로 있었는데, 버트런드 러셀의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임종 직전 어머니를 떠올렸어요. 3일간 어머니의 무의식은 어디에 있었나, 인간의 원형인 영장류가 살던 태곳적으로 건너간 건 아닐까…. 뚝딱 플롯이 나왔죠.”
그간 작품의 화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여성의 목소리를 취하면 개인 감정에 휘둘려 캐릭터 장악이 힘들 것 같았다. ‘진이, 지니’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활짝 열어 보였다.
“‘세상에 주눅 들지 않는’ 이진이 모녀는 실제 저희 모녀와 싱크로율 90%예요. 성격, 대화 방식, 에피소드를 상당 부분 차용했죠. 제 이야기를 하는 부담이 컸는데, 틀을 깨고 나니 후련합니다.”
뜨거운 이진이와 달리 김민주는 “삶이 시시해지는 병에 걸린” 캐릭터다. 무쇠 같은 이진이와 ‘간장 종지’라 구박받는 김민주는 나흘간 서로를 뜨겁게 겪으며 성장한다. 작가는 “지질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김민주를 좋아한다. 요즘 청년들은 노력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꼭 ‘성취’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삶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해 삶의 주인공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신작 반응이 어떨 것 같으냐고 묻자 ‘만담꾼+개그우먼’ 버전의 목소리가 살짝 수그러든다. “독자들이 ‘정유정 맛탱이 갔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된단다. 주인공들은 막다른 곳에서 삶의 전성기를 소환한다. 그는 “만담꾼의 이야기를 신나게 친구들에게 전하던 열 살 무렵의 정유정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당시 꼬마와 지금 제 모습이 다르지 않아요. ‘문호’ 이런 거 말고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쓰려고 킥복싱부터 요가까지 하루 3시간씩 운동하며 ‘기름 넣고’ 있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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