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입 재수학원을 다니며 담배를 배운 박모 씨(20·여)는 박하향이 나는 멘톨 담배를 사흘에 한 갑씩 피운다. 일반 담배보다 향이 부드러워 거부감이 덜한 게 박 씨가 담배를 배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 ‘상쾌한 담배’ 퇴출 나서
멘톨이나 바닐라 등 향기 첨가물을 넣어 담배 특유의 텁텁한 맛을 줄인 ‘가향담배’는 청소년이나 여성을 흡연으로 이끄는 주범으로 꼽힌다. 2017년 질병관리본부의 가향담배가 흡연 시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흡연 경험이 있는 응답자 5657명 중 63.2%가 가향담배를 피운다고 답했다. 담배를 배우기 시작한 10대 남성(70.3%)과 만 19∼24세 여성(81.7%)층에서는 가향담배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이런 첨가물들은 담배 중독성을 더 높인다. 멘톨은 진통제 역할을 해 담배 연기로 인한 기관지 통증을 줄여준다. 코코아는 기관지를 확장시켜 더 많은 담배 연기가 폐에 도달하게 한다. 과일맛과 향을 내기 위해 설탕을 첨가한 담배는 연소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줄이고 청소년과 여성 등 신규 흡연자 증가를 막기 위해 가향담배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각종 첨가물을 함유한 담배부터 가장 인기가 많은 멘톨 담배까지 단계적으로 금지시킬 계획이다. 브라질은 2012년 세계 최초로 모든 담배 제품에 가향물질 사용을 금지했다.
○ 광고 없앤 ‘표준담뱃갑’ 도입
보건복지부는 21일 이런 내용을 담은 ‘흡연 조장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14년 담뱃값 인상, 2016년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이 흡연 수요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대책은 생산부터 광고, 판촉까지 담배 공급 규제를 중점적으로 강화했다. 전자담배 등 신종 담배가 등장하면서 청소년 흡연율이 최근 2년 연속 상승하는 등 기존 금연 정책의 약효가 다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담배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켜 비흡연자들의 흡연 욕구를 차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색상과 글자 크기 등을 통일한 ‘표준담뱃갑’이 이르면 2022년부터 도입된다. 제품명을 최대한 작은 글씨로 넣고 광고 효과를 노린 문구는 쓸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담뱃갑의 경고 그림 크기를 현재 앞뒷면 30%에서 50%로 넓혀 흡연의 위험성을 더욱 부각시킬 계획이다.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 이르면 내년부터 전자담배 흡입 기기의 광고 및 판촉 행위를 금지하고 일반 담뱃갑처럼 경고 그림과 문구를 넣어야 한다.
○ 실내 흡연실 없애고 실외에 1만 곳 설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25년부터 공중이용시설의 실내 흡연이 전면 금지된다. 현재는 연면적 1000m² 이상 건축물에선 실내 흡연이 금지돼 있다. 이 기준을 2021년 연면적 500m² 이상 건축물로, 2023년 모든 건축물로 확대할 예정이다. 2025년에는 모든 실내 흡연실을 폐쇄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실내 흡연을 금지하면 길거리 흡연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실외 흡연구역은 2017년 632곳에서 1만 곳으로 확충한다.
이번 대책은 담배를 규제하기보다 ‘퇴출’시킨다는 글로벌 금연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복지부 권준욱 건강정책국장은 “각국이 추진하는 ‘담배 엔드게임(종반전)’ 정책이 신종 담배 출현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며 “담배 소비를 줄일 강력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흡연율이 한국보다 낮은 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규제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은 “외국처럼 담배 소매점에서 담배 광고를 완전히 없애고, 공동주택의 금연구역을 실내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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