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산업단지에서 직원 200명 정도의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는 대표 K 씨를 최근 만났더니 황당하고도 서글픈 이야기를 했다. 지난해 말 그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이 갑자기 방문해 공장을 둘러보지도 않고 어차피 털면 나올 테니 이실직고하라고 했다. K 대표는 비교적 약한 사안 하나를 말하고 경미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안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근로감독관은 “미안한데 사실은 나도 실적 때문에 큰 기업은 이미 한 바퀴 돌고 여기 나왔다”며 용역업체에서 파견받은 직원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대여섯 명 된다고 하니 연말까지 그 직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했다. 수사권, 체포권까지 갖고 있는 근로감독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용역직원들의 능력과 무관하게 곧바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K 대표는 “올해는 원래 뽑을 예정이었던 신입사원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고 하면서 “작년 말 일만 없었으면 우리 회사를 첫 직장으로 가졌을 젊은 애들이 안됐다”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2년간 29.1% 오른 최저임금이 고용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엊그제 ‘처음’ 인정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몇 페이지에 걸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 전환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숱하게 실려 있었다. 이후 통계청 공식 통계로도 이런 우려가 사실로 확인됐는데 고용부는 그동안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청와대가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준 충격보다 이런 정부의 의도적 무능이 더 충격적이다.
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2.6%에서 2.4%로 낮추면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노동생산성 향상이라고 지적했다. 성과는 안 오르는데 정부가 나서 봉급은 더 주라고 하면 회사가 직원 줄이는 것은 뻔한 이치다. 이런 간단한 상식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데 2년씩 걸린다면 청와대 고용부를 포함한 정부 공무원의 노동생산성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준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려면 일 잘하는 사람은 더 대우해주고, 못하는 사람은 대우를 낮게 하면 된다. 그래도 도저히 안 되면 해고해서 잘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노동개혁은 금기어가 됐다. 귀족노조 등 내부 기득권층의 자리를 더 튼튼히 해주고 결과적으로 신규 진입은 어렵게 만들고 있다. 독일 등 요즘 잘나가는 국가들이 추진해온 노동시장 변화와는 정반대다.
정부가 500조 원 슈퍼팽창예산에 추경을 더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한다. 아직 나라 곳간에 여유가 있다 하니 어려울 때 빚을 좀 더 내 사용하는 게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의 땜질 또는 현금복지 같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할 게 아니다. 잠재성장률을 올리는 방향, 다시 말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게 OECD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권고다.
예컨대 카풀 같은 공유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데 추진 과정에서 택시 기사처럼 피해 보는 이해관계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곳에 세금으로 적절한 보상을 해가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그래야 다시 경제가 좋아지고 일자리도 늘고 빚을 갚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그런데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정부는 세금으로 소 잡아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쓸 때는 좋겠지만 그러면 대한민국 경제,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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