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사거리에서 올림픽공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성안로. 20일 오후 2시경 왕복 2차로 옆으로 셔터를 내린 가게가 드문드문 보였다. 철 지난 느낌의 한글간판이 걸린 이 가게들은 해질 녘 슬슬 문을 여는 속칭 ‘방석집’이라 불리는 변종술집이다.
“밤늦게 꽃 장식을 만들거나 새벽시장에서 꽃을 사와 작업할 때가 있는데 종종 옆집 가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손님과 종업원이 서로 희롱하는 그런 소리요….”
서울
강동구 성안로 ‘엔젤공방거리’에 점포를 낸 이재인 씨(왼쪽)와 박경선 씨가 각각 자신의 공방 앞에서 대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때 ‘방석집’ 거리로 불렸던 이곳을 새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강동구는 청년 창업 지원 등 프로젝트를 내놓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꽃을 활용해 다양한 소품을 만들고 관련 강좌도 여는 박경선 ‘모리앤토’ 대표(36·여)는 민망하게 웃으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박 대표의 점포는 방석집과 벽 하나를 사이에 뒀다. 방석집은 보통 일반음식점 등록을 하지만 대부분 여성 접대부가 있다. 성매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작고 허름한 방석집은 2000년대 들어 사라지는 추세지만 성안로에서는 그때부터 오히려 늘어났다고 지역 주민들은 전했다. 인근의 집창촌이던 속칭 ‘천호동 텍사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업주와 종업원들이 성안로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
이 때문에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밤이면 업소 주인들이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호객행위를 했다. 불그스름한 가게 불빛 너머에는 여종업원이 서있었다. 아침이면 거리 곳곳에 토사물이 널려 있었다. 주민들은 아이들 보기 민망하고 무섭다며 밤에는 이 거리를 피해 다녔다.
성안로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강동구는 성안로 일대 방석집 밀집거리를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공방거리로 바꾸기로 하고 ‘엔젤공방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이어 방석집이 있는 건물의 소유주를 찾아가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변종업소에 대해서는 식품위생법 위반과 불법 성매매 등으로 강하게 단속했다.
서울 강동구 성안로 엔젤공방거리의 ‘사과나무공방’에서 엄마와 아이가 책 표지부터 속지까지 만들어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 결과 현재는 꽃 디저트 도자기 목공예 금속공예 인형 같은 상품을 취급하는 공방 15곳이 대신 들어섰다. 프로젝트 시행 초기인 2016년 4월 36곳이던 방석집은 이달 현재 12곳으로 줄었다.
강동구는 점포 보증금과 1년 임차료 절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청년 창업가를 끌어들였다. 김인숙 씨(62·여)가 5년 전 매입한 건물에도 방석집 4곳이 있었는데 현재는 1곳만 남았다. 김 씨는 “사실 임대수입은 줄긴 했는데 거리가 깨끗해지고 밝아져서 좋다”며 “술집 많은 건물보다는 청년에게 도움 되는 건물주가 더 낫지 않느냐”며 웃었다. 박 대표에게 민망한 소음을 들려주던 옆집도 지난해 11월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12호 엔젤공방 ‘잰아틀리에’로 바뀌었다.
어두운 방석집 거리에서 밝은 청년공방 거리로 변신시키는 프로젝트는 지금 과도기다. 여전히 방석집이 영업을 하고 있어 주차문제 등으로 공방 대표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방석집 주인들과 공방 청년들 사이에 감정이 좋을 리 없어 갈등이 커질 때도 있다. 오래된 이미지 탓에 유동인구가 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청년들은 희망을 보고 있다. 올 들어 거리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 걸 느낀다. 이재인 잰아틀리에 대표(36·여)는 “입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공방 한 곳을 왔다가 인근 공방을 한두 곳 더 찾는, 이른바 공방투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손님이 늘면 늘수록 방석집은 자연도태할 확률이 높아진다. 청년의 꿈을 키우는 새 관광명소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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