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땐 ‘운전면허를 빨리 따야지’ 했는데 20대 남매인 제 아이들은 자동차를 별로 사고 싶어 하지 않아요. 현대자동차그룹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칼라일그룹 주최 콘퍼런스에서 이규성 칼라일그룹 공동대표가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대표의 건너편에 앉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에게 한 질문이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제 딸은 싼타페를 샀지만 아들은 운전면허를 딸 생각을 안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길 희망하고 있다”며 “우리 비즈니스를 (제조 중심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전환한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수석 부회장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날 행사는 세계 3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칼라일그룹 초청으로 정 수석부회장이 참석했으며 이 대표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등 약 180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 분간 사전 시나리오 없이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답은 영어로 진행됐다. 정 수석부회장이 자본시장 주요 관계자를 대상으로 대담 형식을 빌려 소통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 성장을 위한 현대차그룹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을 듣자 단번에 “고객”이라고 답했으며 “리더십 측면에서 가장 큰 도전 과제”를 묻는 질문에는 “미래 트렌드 대응”을 꼽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어 “자동차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스마트폰처럼 바로 재설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품질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문답을 통해 현대차가 미래차 혁신기술을 선도하면서 품질경영도 강화할 것임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일화를 들기도 했다. 그는 1988년 무렵 3년 동안 정 명예회장과 한집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수석부회장은 “매일 오전 4∼5시경 할아버지와 아침식사를 했는데 늘 ‘시류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며 “이제는 그 의미를 약간 알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 트렌드를 읽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가 스타트업처럼 변화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리더십은 강력한 리더십, 즉 직원들을 독려하고 전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따르도록 하는 리더십이었다. 지금은 직원들과 같이 논의하고,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려고 한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건립될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개발 관련 질문도 나왔다. 정 수석부회장은 “삼성동 땅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미래 가치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라면서도 “현대차그룹은 핵심 사업인 자동차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관심을 가진 많은 투자자를 확보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대체로 이날 대담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운전과 관련한 자녀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에피소드 등 위트 있는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현대차그룹의 혁신 의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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