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이 인근에 짓던 지열발전소에서 이뤄진 물 주입에 의해 촉발됐음을 밝힌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지하 물(유체) 주입 작업 과정에서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리 방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연구단은 기존에 알려진 지진 발생 위험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지하 상태와 주변의 대도시 존재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위해(risk)’ 관리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강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장(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과 여인욱 전남대 지질학과 교수 등 국내 연구자 7명은 윌리엄 엘즈워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등 국제 자문위원 6명과 함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3일자에 ‘유체 주입에 따른 유발지진 위해 관리’라는 제목의 정책 특별 기고(Policy Forum)를 발표했다. 기고에서 조사연구단은 “포항 지진은 유발지진 발생과 관련한 기존의 경험 가설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단장은 “기존에는 발생할 수 있는 유발지진의 규모가 땅속에 주입하는 물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땅속에 물을 넣다가 특정 규모의 지진이 나면 물 주입을 줄이는 식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기술인 ‘신호등체계(TLS)’를 전 세계가 써 왔다”고 말했다. TLS는 지열발전은 물론이고 수압으로 땅을 뚫어 셰일 층 내부에 남은 가스 등을 채취하는 수압파쇄법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확한 과학적 결론이 아니라 현장 경험에 근거한 불완전한 가설이라는 게 조사연구단의 주장이다. 이 단장은 “포항 지진을 통해 이 가설이 틀렸으며, 실제로는 지하의 응력과 단층 상태 등 조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지진의 규모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연구단은 단층 속을 파악하고 작은 지진의 발생 현황을 계속 분석해 위험도를 ‘업데이트’하는 방법으로 유체 주입량을 복합적으로 결정할 것을 제안했다.
또 포항처럼 인구 50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인접해 있는 특수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똑같은 규모의 지진이 나도 인구가 거의 없는 지역과 대도시 인근은 피해가 다르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사람을 고려한 개념인 ‘위해(risk)’로 지진 발생 가능성을 재평가하자는 것이다.
다만 이 단장은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을 통해 촉발됐다는 결론이 모든 지열발전 연구 중단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새로운 위해 관리를 통해 잠재성이 있는 연구를 좀 더 안전하게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열발전과 함께 포항 지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돼 포항 지진 직후 실험이 중단된 포항 영일만 이산화탄소 저장(CCS) 실증사업은 한국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 조사연구단의 조사 결과 포항 지진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연구단의 장찬동 충남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단층 안정성 분석 결과 저류층을 관통하는 단층들은 비교적 전단(수평으로 미끄러짐) 성향이 낮아 이산화탄소 주입에 따른 단층 재활성 및 미소 지진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신영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연구본부 CO2지중저장연구단장도 “해저면 부근까지 발달한 단층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며 “이산화탄소 저장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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