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채감축목표제’ 도입 후… 부채비율 250%이하로 맞추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임대주택 건설 등… 지방공기업 본연의 역할 대폭 축소
21일 인천 서구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1km 남짓 떨어진 경서해드림 터. 둘러친 펜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드넓은 공터에 잡초만 무성했다. 면적이 2만9743m²인 이 터는 인천도시공사 소유인데 13년째 나대지(裸垈地)로 방치돼 있다. 2006년 말 공공임대아파트 750채를 짓기 위해 사업계획승인까지 받았지만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에는 경서해드림 말고도 영종해드림(613채 규모·2만5774m²), 도화국민임대(482채 규모·2만7559m²) 같이 10년 넘도록 중단되고 있는 공공임대아파트 건설사업이 있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사업이 되레 서민 주거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서구 경서동 다세대주택에서 23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이모 씨(63)는 “우리 동네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당연히 입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임대아파트가 언제 지어질지 기약도 없어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주택공기업의 책임과 의무인 공공임대아파트 사업이 이처럼 진행되지 못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정부가 지방공기업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도입한 부채감축목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2013년 “지방공기업이 무분별하게 설립돼 경영 부실과 민간 영역에 대한 침해가 우려된다”며 강도 높은 공공기관 혁신을 추진했다. 이렇게 도입된 제도가 지방공기업 부채비율을 단계적으로 250% 이하로 줄이도록 규제하는 부채감축목표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재정 위기에 몰린 인천도시공사는 부채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보유하고 있던 알토란같은 토지 여러 건을 조기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봤다.
문제는 인천도시공사 자체의 손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립 같은 지방공기업 본연의 역할이 위축됐다는 데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신해 도시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지방도시개발공사는 토지보상비를 비롯해 대규모 자금을 사업 초기에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부채비율 감소 가이드라인은 각 사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방공기업에 동일하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도시개발공사의 임대주택사업에서 임대보증금은 회계 명목상 부채로 분류된다. 장기임대의 경우 임대기간은 30년 이상이어서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면 할수록 도시개발공사의 고정부채는 늘게 된다. 부채비율을 감축해야 하는 도시개발공사로서는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공공임대주택사업을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도심 도시재생사업도 마찬가지다. 초기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되지만 사실상 수익을 내기 힘든 공익사업 성격이 짙다. 부채비율을 의식해야 하는 처지인 전국 지방도시개발공사는 공익사업을 상대적으로 축소하게 된다. 그 피해는 원도심 주민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수도권 신규 공공택지를 발표한 이후 이들 택지를 중심으로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을 이끌어야 하는 경기도시공사도 부채감축목표제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시공사의 자본금은 1조6532억 원. 수도권 3개 광역단체 산하 도시공사 가운데 가장 적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28%, 인천도시공사의 46% 수준이다.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과천 등 3기 신도시 대형 개발사업과 공공임대주택사업에 적극 참여하려면 적어도 자본금의 6∼7배인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채권을 발행하면 부채감축목표제에 따른 부채비율 250%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기도의회는 “관내 택지개발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고 경기도시공사 참여는 20%에 불과하다”며 더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실정이다.
부채감축목표제가 지방공기업에 따라 일관되지 않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사업 규모만 다를 뿐 업무 특성은 사실상 비슷한 LH의 경우 2017년 기획재정부에서 기관의 자율적 재무 관리 책임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부채감축목표제 적용을 폐지했다. LH는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규모의 5배 이내로 공사채를 발행해 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부채감축목표제가 지방도시개발공사의 공공을 위한 목적사업 추진을 더디게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지방공기업의 부채비율 산정 방식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단국대 김호철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한국도시재생학회 명예회장)는 “지방도시개발공사가 서민 삶에 필요한 공공서비스 제공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중추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부채비율 현실화와 적정성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며 “전국 도시개발공사의 도시재생과 주거복지사업 추진에 원활하게 자금이 조달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