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미술관 측이 언급한 ‘가감 없는’ 기사는 현재 회고전이 열리는 예술가 박서보의 인터뷰였다.
해당 기사는 작가 작업실을 찾아 회고전을 열게 된 소감과, 그간 제기된 여러 이야기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듣고 정리했다. 그런데 미술관은 “다른 곳은 전시에 포커스를 맞춰 써주셨는데, 해당 기사는 작가 발언을 가감 없이 써서 난감하다”고 했다.
난감하다고 한 것은 이런 내용이다.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라는 표현의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과 ‘팝 아트’, ‘옵 아트’를 수용했다는 미술관의 설명에 대해 작가가 부인한 대목이다. 마치 미술관과 작가가 대립하는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형 앵포르멜’과 팝 아트, 옵 아트를 수용한 것은 이미 다 정립된 맞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미 다 정립됐다’는 시각이다. 미술관은 현재 생존 작가의 전시를 열고 있다. 미술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당연히 다른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더구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닌가. 공공의 목적으로 전시를 열었다면 비판까지도 수렴해 건강한 담론을 형성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은 정답이 있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봐서는 안 되며, 미스터리에 휩싸인 여신처럼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좋은 예술은 예술가 자신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의 치열한 비평과 검증을 거쳐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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