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체전 아이들에 “그게 경기냐” 폭언… 코치들, 女선수 목 감싸는 등 과잉 접촉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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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전북대회 인권실태 조사
아동학대 수준의 욕설 난무하고 복도나 관중석서 옷 갈아입게 해


“지금 장난하냐? 왜 시키는 대로 안 해!”

26일 전국소년체육대회 핸드볼 중등부 경기가 열린 전북 정읍의 한 체육관. 경기 전반전이 끝나자 한 남자 코치가 선수들을 체육관 내 복도에 세워 놓고 한 말이다. 고함도 질렀다. 이 코치는 중학생 선수들 얼굴을 향해 주먹을 들어올렸다 내리기도 했다. 전반전을 막 마친 선수들은 코치의 폭언을 들으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25일과 26일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열린 전북 일원의 경기장을 찾아 대회 참가 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점검했다. 25∼28일 열린 이번 대회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1만2000명이 참가했다.

인권위는 “이번 대회 12개 종목 경기장을 찾아 점검한 결과 학교 체육 지도자들의 고함과 폭언, 욕설 등으로 아동학대 수준의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었다”고 29일 밝혔다. 26일 열린 중등부 핸드볼 경기를 직접 지켜본 조사관 A 씨는 “지도자가 경기 내내 아이들에게 욕설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며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언행이 관행처럼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패한 팀의 한 코치가 선수들에게 “그걸 경기라고 했냐”고 화를 내면서 손바닥으로 선수의 목 뒷부분을 때리는 일도 있었다. 경기 도중 “다리를 다쳤다”고 알리는 여학생 선수에게 “경기를 계속 뛰어라”고 지시하는 코치도 있었다.

여학생 선수들과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조사관 B 씨는 “경륜 경기에서는 출발 전 선수들의 자전거 안장 밑을 잡아주는데 한 집행위원이 안장 아랫부분이 아니라 여학생 선수의 허리 양옆을 잡고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일부 남자 심판과 코치가 여학생 선수의 목이나 어깨를 감싸 안는 모습도 조사관들의 눈에 띄었다.

인권위는 “조사 기간에 방문한 체육관 15곳 중 탈의시설이 있는 곳은 5군데뿐이었다”며 “이마저도 수영장 한 곳을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체육관 복도나 관중석 등 노출된 장소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고 한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가예산이 지원되는 대회에서 아동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지적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인권위원회#전국소년체육대회#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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