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50)의 기억 속에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 편의 영화로 남아 있다. 폐막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은 받았지만 어떤 상을 받을지 몰랐다. 다른 부문 시상이 진행될 때마다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전달 과정의 착오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폐막식까지 남아 있어 긴장감이 더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9일 만난 봉 감독은 “타란티노 형님이 오지 않았다면 저희가 상을 수상했을 때 서스펜스가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와 대저택, 두 공간에서 90% 이상 촬영했다. 그만큼 공간의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루 종일 자연광이 내리쬐는 부잣집과 하루 30분 정도 햇살이 비치는 반지하의 대비는 빈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도 봉 감독에게 “어디서 그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봉 감독이 “세트에서 촬영했다”고 답하자 이냐리투 감독이 놀랐다고 한다.
가난한 집과 부잣집이 한 공간에 얽히는 이야기는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 당시 떠올린 연극 소재에서 확장됐다. 전작들과 달리 ‘기생충’은 공간의 이동이 적고 대사가 많다는 점에서 다분히 “연극적”이다. 그렇게 묵혀 놨던 시나리오를 2017년 ‘옥자’가 개봉한 뒤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다른 영화들을 꾸준히 봐온 덕에 배우 섭외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간중독’(2014년)에서 조여정, ‘우리들’(2015년)에서 장혜진의 가능성을 봤다.
“평소 시나리오를 쓸 때보다 빠르게 완성시켰어요. (주제 면에서) 당시 ‘설국열차’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작들보다) 후회나 미련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에요.”
‘마더’의 김혜자처럼, ‘기생충’도 송강호를 머릿속에 전제하고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연체동물처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가는 기택 역에 생활 연기의 달인인 송강호가 단번에 떠올랐다. ‘살인의 추억’(2003년)부터 4개 작품을 함께한 송강호는 이날 “솔직히 시나리오를 읽고 ‘걸작’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봉 감독의 작품 세계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의미에서 ‘정말 이상한’ 영화”라고 했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말은 아직 부담이다.
“(봉 감독과) 작품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붙여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작품의 깊이나 예술적 비전을 제가 다 담아냈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송강호)
봉 감독은 박 사장네보다는 기택네에 감정이입을 했다고 한다. “같은 듯해도 자세히 보면 다른 두 가족”이라는 의미로 붙인 ‘데칼코마니’라는 처음 제목도 그래서 바꿨다.
“칸에서 ‘이 영화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냐’는 외국 기자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어느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답했어요. 다들 수긍하더라고요.”(송강호)
그래도 둘에겐 한국 관객의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 봉 감독은 “미묘한 뉘앙스를 국내 관객이 크게 공감할 것”이라며 “칸에서 웃음이 많이 터졌고, 박수도 나왔지만 배우들 특유의 말맛까지는 공감을 못 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차기작을 물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대작은 아니고 ‘기생충’ 사이즈의 영화요. 장르는 공포? 액션? 지금껏 그래 왔듯 제가 규정한다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 모르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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