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설계 등 영향력 막강했던 ‘경제 中情부장’
박정희 前대통령도 “국보”로 불러
박정희 정권 때 한국 중화학공업을 설계하고 기틀을 마련한 오원철 전 대통령제2경제수석비서관(사진)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오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보’라는 찬사를 들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등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엔지니어 출신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효시로 불리며 박 전 대통령 옆에서 1971년부터 8년간 경제수석으로 일했다. 이 기간에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이끌었다.
1928년 황해도 풍천에서 태어났다. 경성공업전문학교 화학공업과(서울대 화학공업과 전신) 재학 중 6·25전쟁이 나자 공군 기술장교후보생으로 입대한 뒤 소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 공장장, 국산자동차주식회사 공장장으로 일했다.
공직에 들어간 건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다. 기술 인재를 찾던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으로 발탁했다. 상공부 공업제1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과학기술 등을 담당하는 제2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오 전 수석은 경제수석 재직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경제구조를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 일본과 동등하게 될 수 있다고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해 오케이를 받았다”고 했다. 중화학공업 기획단 단장을 맡아 경남 창원, 울산, 경북 구미, 전남 여수 등에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창원시 1호 명예시민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창원공단을 둘러본 뒤 기자들 앞에서 오 전 수석을 ‘국보’라고 소개했다. 세간에선 그를 ‘경제 중정(中情)부장’이라고 할 정도로 경제정책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오 전 수석은 전투기 국산화 프로젝트 등 방위산업 육성도 진두지휘했다. 행정수도 이전도 시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 서거로 중단됐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 때 권력형 축재 혐의로 체포돼 공직에서 물러난 뒤 1990년대 들어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이후 ‘한국형 경제건설’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등의 저서를 쓰며 박 전 대통령 일대기를 정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노경미 씨, 아들 범규 씨와 딸 인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6월 1일 오전 7시 30분. 02-2258-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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