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재문제와 관련해 최근 국제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금융거래가 아니라 해상 불법 환적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을 피해 가면서 각종 품목의 불법 환적을 시도하는 것은 ‘해적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해상 당국이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휴 그리피스 전 대표(사진)는 최근 미국이 압류해 몰수 조치에 나선 북한 선적 와이즈 어니스트호와 관련해 북한의 제재 위반 시도를 차단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와이즈 어니스트호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위반하는 불법 행위를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며 “북한이 이런 식으로 석탄을 운송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북한의 선박이 압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의 근거에 대해선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작업한 대북제재 관련 연례보고서에서 꼼꼼하게 조사, 검토한 결과”라고 했다.
그리피스 전 대표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의 수장으로 5년간 패널 활동을 이끌어온 제재 전문가. 4월에 임기를 마치고 유엔을 떠난 그는 지난달 31일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피스 전 대표는 “북한은 제재를 회피하기로 작심한 나라”라며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체계와 글로벌 조직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 중동, 남미에 설치한 45개의 공관을 거점으로 사실상 전 세계 제재망을 피해 외화벌이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 그는 “각 지역의 공관에 파견된 북한 관계자들이 (외교관 면책특권을 규정한) 빈협약을 남용하며 외교관 여권으로 조사를 빠져나가고 있다”며 “북한의 정보기관 요원, 상당한 수의 무역거래상, 무기 밀매업자, 은행가들도 여기에 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북한은 지도자가 제재 회피를 절대적인 우선순위로 삼고 (대북제재위원회가 설립된 2006년 이후) 13년이나 이를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2월에 내놓은 연례보고서는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비롯한 북한 선박들의 불법 석탄 운송은 물론이고 해상에서 이뤄지는 불법 유류 환적의 생생한 장면들을 공개해 크게 주목받았다. 배와 배를 연결한 호스의 모양이나 갑판 위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그대로 포착된 사진들도 실렸다. 이에 대해 그리피스 전 대표는 “유엔 회원국들의 협조를 통해 얻은 조사 정보들을 바탕으로 모든 문장, 모든 단어 하나하나까지 모두 검증을 거쳤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한국 선박과 기업이 석탄의 불법 환적에 관여해 조사를 받았던 사건과 관련해 그는 “국적과 상관없이 제재를 회피해 이익을 얻으려는 상인들은 어디에나 있다”며 정부가 아닌 사적 ‘기업’들의 회피 사례임을 강조했다. 북한의 불법 환적에는 한국뿐 아니라 최소 8개 유엔 회원국이 관여돼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제재 회피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국경 없는(sans-frontier) 제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북한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해제를 요구한 제재들에 대해서는 “2017년 채택된 일련의 제재들은 북한의 외화 수입을 막는 차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들”이라고 단언했다. 석탄 철강 광물질 해산물 등 수출이 차단된 품목들은 북한의 중요한 수입원인 데다 인공위성과 해상추적 기술을 이용한 감시의 눈을 피해 반출, 운송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
그리피스 전 대표는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탄도미사일 발사이므로 제재 위반이 맞다”면서도 “(징계에 대한) 권고 여부는 패널들이 속한 회원국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최근의 발사는 과거 북한(도발)의 불편한 메아리이며 제재가 더 강하게 이행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영국 국적의 그리피스 전 대표는 유엔을 떠난 이후 기존에 활동했던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아프리카나 이란의 제재 관련 업무도 해봤지만 북한은 제재 관련 업무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집중적인 조사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매우 어렵고도 고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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