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과 탄 한강유람선, 구명조끼 눈길도 안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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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비극에도 안전 불감증

“지금부터 구명조끼 착용법에 대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앞쪽에 있는 승무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1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 ‘시티’호의 갑판 위 스피커를 통해 이런 안내방송이 나왔다. 선착장을 출발한 지 7분쯤 지난 뒤였다. 곧바로 한 승무원이 갑판 뱃머리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구명조끼 착용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구명조끼는 부착끈과 포켓이 나오도록 입으시고 가장 먼저 가슴끈, 허리끈을 착용해 주십시오….” 스피커를 통해 계속 이어져 나오는 설명에 따라 승무원이 시범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객은 승무원의 시범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승무원의 시범과 설명을 제대로 보고 듣는 승객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갑판 위에는 100명의 승객이 있었다. 이 중 25명은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였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 중 누구도 아이들에게 구명조끼 착용 시범을 잘 보고 들으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 사고로 구명조끼 착용을 포함한 유람선 내 안전수칙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날 한강 유람선에 탑승한 기자는 배에서 내릴 때까지 구명조끼를 착용한 승객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현행 ‘유선 및 도선사업법’은 5t 이하의 소형 선박 중에서도 관할 관청이 지정한 일부 선박에 대해서만 승객들의 구명조끼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시티호는 247t급이어서 승객들의 구명조끼 착용이 의무는 아니다. 선박 사고는 배의 규모에 관계없이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대상 선박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자가 탄 유람선은 여의도선착장을 출발해 마포대교, 당산철교를 지나 다시 여의도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40분간 운항한다. 이런 유람선이 하루에 6차례씩 일주일 내내 한강 위를 다닌다. 유선 및 도선사업법에 따르면 유람선 사업자는 안전한 승선·하선 방법과 인명 구조장비 사용법, 유사시 대처 요령 등을 출항 전에 승객들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이날 기자가 탑승한 배에서는 구조장비 사용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설명이 있었지만 사고 발생 시 행동 요령에 대한 안내는 따로 없었다.


■ 갑판 정원 80명인데… 승객 100명 올라가도 아무도 제지안해 ■

1일 서울 여의도선착장을 출발한 한 유람선 갑판 위로 나와 있는 승객들. 유람선이 운항하는 동안 갑판 위에는 수용 정원 80명을 초과한 승객들이 몰려 있기도 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1일 서울 여의도선착장을 출발한 한 유람선 갑판 위로 나와 있는 승객들. 유람선이 운항하는 동안 갑판 위에는 수용 정원 80명을 초과한 승객들이 몰려 있기도 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어린이 친구와 함께하신 고객님께서는 어린이가 뛰어다니거나 난간에 매달리지 않도록 늘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구명조끼 착용 시범이 있기 전엔 스피커를 통해 이런 안내방송이 나왔다. 탑승 어린이 보호자들에게 각별히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탑승 어린이들 중에는 난간에 매달렸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는 부모는 보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한 손으로 안은 채 난간에 바짝 붙어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어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 여성은 ‘갈매기를 보라’며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이를 난간 가까이로 이끌기도 했다. 난간에 매달리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챙기지 않기는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유람선이 운항하는 동안 대부분의 승객은 갑판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운항 시간의 절반가량인 20분 정도는 전체 승객 100명 모두가 갑판 위에 있었다. 갑판 아래 1층에는 좌석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음악 공연이 진행되는 약 10분 동안을 제외하고는 승객들은 갑판 위에 있었다. 갑판이 있는 이 유람선의 2층 최대 수용 인원은 80명이다. 수용 인원을 넘어선 승객들이 갑판 위로 나와 있었지만 이를 통제하는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김광수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승객들이 갑판 위로 다 올라가 있으면 무게중심이 위로 쏠려 배의 복원성이 줄어든다”며 수용 인원을 초과한 승객이 갑판 위에 머무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기자가 유람선 곳곳을 둘러본 결과 구명조끼는 1층 좌석 맨 뒤편과 앞쪽 무대 주변에 성인용 총 138개, 2층 매점과 갑판 좌석 아래에 성인용 85개, 소인용 16개가 있었다. 유선 및 도선사업법은 구명조끼를 선박 정원의 120% 수준으로 갖추도록 정하고 있다. 시티호의 승선 정원은 256명이다. 규정상 구명조끼는 308개가 있어야 한다. 소인용 구명조끼는 정원의 20% 이상을 갖춰놔야 한다. 최소 52개는 있어야 한다. 유람선 측은 “1, 2층 곳곳에 성인용 구명조끼 267개, 2층에 소인용 구명조끼 61개가 비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유람선을 운영하는 ‘이랜드 크루즈’ 최경민 대표이사는 “유람선 시설 등을 선박안전기술공단에서 매년 한 차례 점검하고 있다”며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서도 매달 불시 점검을 나와 구명조끼 개수 및 상태 등을 검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명조끼가 비치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유람선 곳곳을 둘러본 기자가 찾지 못했다면 승객들이 비상시 급박한 상황에서 구명조끼를 발견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였다.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에도 구명조끼는 비치돼 있었지만 이 배는 크루즈선에 추돌당한 뒤 7초 만에 침몰했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구명조끼가 어느 위치에 어떻게 보관돼 있다는 걸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2일 오후 이랜드 크루즈가 운항하는 유람선 ‘트리타니아’호에 올라 안전관리 실태를 직접 점검했다. 진 장관은 “국내 유람선의 안전 실태를 꼼꼼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김은지 기자
#한강유람선#구명조끼#다뉴브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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