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 때문에 검회색을 띠는 서울 하늘이 내려다보이는 한 빌딩의 고층 사무실. 그곳에서 최근 한 대형 건설회사 사장을 만났는데, 대뜸 미세먼지와 인공강우 얘기를 꺼냈다. 단순히 화젯거리로 삼으려나 보다 했는데, 뭔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답을 구하는 도발적인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중동에 갔더니 인공강우를 자주 내리면서 먼지를 잡는다고 현지에서는 그러는데, 그렇게 실용적으로 인공강우를 활용할 수 있나.” “미세먼지가 국외에서 떠밀려온다고 하는데, 바람에 실려 오는 거면 곧바로 다시 날려 가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미세먼지에 민감해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까지 들고 다닌다는 그는 고깃집이나 밀폐된 식당 등 일상 속의 좋지 않은 미세먼지 현황을 진지하게 전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미세먼지는 사실상 피할 길이 없다. 집에서 공기청정기를 틀어 둔다고 해도 청정기 주변 위주로 정화되는 데다 오랫동안 환기를 하지 않으면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다. 창틈이나 문틈으로 들어오는 미세먼지가 섞인 공기를 막는 것도 현재 주택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그런데 시나브로 아파트에 공기청정기가 결합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작년 말 일부 건설사가 내놓기 시작한 미세먼지 저감 아파트가 올해 3, 4월경부터 분양 광고에서 부쩍 늘었다. 핵심은 집 안으로 공기를 들이는 공조시설에 필터를 설치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아파트들에는 공조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필터 기능은 없다. 내부의 온도를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는 전열교환기 정도만 갖추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 전체를 거르게 되면 문을 닫고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돌릴 때와 달리 환기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집 내부의 공기도 별도로 흡입해 정화하는 기능도 갖췄다.
미세먼지와의 전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관에서 공기바람으로 미세먼지를 털어내는 에어샤워 장치나 옷이나 신발에 붙은 먼지를 털 수 있는 집진기형 청소도구를 갖추는 곳도 있다. 조리 중에 많이 나오는 미세먼지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자동 주방 환기 시스템을 강조하는 곳도 있다.
창틀 틈이나 현관문 틈새로 들어오는 미세먼지를 잡는 것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파트의 밀폐성이 높아지는 데다 아파트 내부의 정화된 공기압을 외부보다 조금 더 높게 유지하는 양압 설비로 이런 미세먼지마저 잡는다는 곳도 있다.
완공 후 미세먼지 저감 장치들의 성능은 검증해 봐야겠지만 앞으로 이런 설비를 도입하지 않은 건설사는 찾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이런 시설들을 추가한다고 분양가가 크게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건설사들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특정 시설이 도입된다는 것은 단순히 편의장치가 추가된다는 것을 넘어 그와 관련된 문화적 흐름이 생긴다는 의미다. 연탄아궁이가 있는 아파트도 있었지만 기름이나 가스보일러가 난방 시스템에서 대세를 차지한 것이 그러했고, 석유풍로에서 가스레인지를 거쳐 지금은 전기레인지로까지 발전한 주방설비도 그랬다. 미세먼지가 이제는 환경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 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분양한 집들이 완공되는 2021년이면 아파트는 미세먼지 저감 설비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아파트로 구분될지 모른다. 오늘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내일에는 일상이 되곤 한다.
자동차를 둘러싼 기술이 급변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수소차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데, 바야흐로 아파트 구입 때 미세먼지 차단 능력을 염두에 둬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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