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추리소설가라 굉장히 쉬울 줄 알았다. ‘못하는 척해야 되나’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채널A 예능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에서 추리소설가 도진기 변호사(52)의 역할은 과제별 로펌 인턴 8명의 순위를 맞히는 일. 예능에선 능력보다 인간미 등 감동 코드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그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에서 3일 만난 도 변호사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소설 쓰기가 예능 출연보다 훨씬 쉽다”고 웃었다. 하루 6시간의 녹화를 마치면 자동으로 1kg씩 체중 감량이 된단다. 말을 더듬었던 기억에 VCR 속 인턴처럼 자책한 적도 많다.
‘굿피플’은 그의 말대로, “정말 현실적인 예능”이다. 철저히 실력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세계다. 그는 “드라마에선 변호사가 변론하다 갑자기 일어나 소리친다”는 MC 이수근의 말에 “실제 법정에서 그렇게 변론하면 판사가 논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실을 짚어준다. 어려운 법률용어 설명도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법조계의 삶을 드러낸 프로그램 중 가장 리얼해요. 진입장벽은 다소 높지만 그만큼 ‘마니아’적이죠. ‘굿피플’이 제 소설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선택’(2010년)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한 그는 10편이 넘는 글을 써왔다. 2017년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주말 시간을 쪼개 틈틈이 글을 썼다. 일본 걸작들로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이라고 못할 게 뭐 있냐”며 호기롭게 펜을 잡았다.
“처음엔 아내가 ‘당신이 무슨 소설이냐’며 비웃었죠. 상을 받으니 마트에서 6만 원짜리 테이블을 사주더라고요.(웃음)”
그는 살아오면서 늘 현실에 입각한 글쓰기를 해왔지만 “항상 상상의 세계를 갈망해왔다”고 말한다. ‘메시지보단 흥미가 중요하다’는 원칙 아래 “독자들이 소름끼칠 만한 트릭을 떠올리면 혼자 키득거리며 글을 쓴다”고 한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2016년)의 집필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로펌 면접에서 당당히 “저는 반골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임현서 인턴을 보면 왕년의 판사 도진기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동년배들보다 사회화가 늦었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으며 개성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저희 세대는 ‘골든 에이지’였죠. ‘굿피플’ 인턴들은 저보다 낫더라고요. 다들 준비가 돼 있는데도 경쟁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요.”
올해만 벌써 두 권을 내놨지만 한 권을 더 쓰는 게 목표다. 논픽션 ‘판결의 재구성’에선 국내 유명 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추리소설 ‘합리적 의심’은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3년 전 판사 시절 초고를 써 놨다. 언젠간 공상과학(SF) 소설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논픽션을 쓰다가 다시 추리소설을 잡으니 ‘멀어진 옛 친구’ 같은 느낌이네요. 빨리 슬럼프를 극복해야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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