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마침내 한국의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을 공개 요구하고 나섰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일 서울에서 열린 한 정보기술(IT) 콘퍼런스에서 “5세대(5G) 네트워크상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며 “지금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수십 년간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중국 화웨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통신업계 등에 협력 중단을 촉구한 것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28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바란다고 (대중 무역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옳은지 한국 정부와 기업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지만 갈수록 “내 편에 서라”는 압력이 거세지면서 점점 고민스러운 상황으로 빠지게 됐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당장은 국내 통신·인터넷 장비 업체와 스마트폰 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화웨이를 대체하며 실적이 좋아질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주요 고객이기도 한 화웨이 상황이 나빠지면 한국 기업들도 타격을 받게 된다.
미중에 대한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액의 38%나 된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나라가 한국이다. 게다가 미중 분쟁은 관세를 넘어 기술패권전쟁, 안보전쟁으로 전선을 넓혀가고 있다.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정부에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구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화웨이와 러시아 통신업체의 5G 협력을 선언했다.
정부는 외교부 내에 미중 분쟁 문제를 전담할 조직을 설치하는 등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동맹관계인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힘들지만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보복도 걱정이다. 미중 분쟁은 앞으로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임시방편으로 대응하기보다 원칙을 세워놓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든든히 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도록 국익을 중심에 놓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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