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올해부터 금융권 일자리 창출 기여도를 측정한 고용 성적표를 공개하기로 한 건 ‘공공기관 일자리 늘리기’ 사업의 금융권 확장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자리 문제가 매우 급박하긴 하지만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고 혁신을 유도해야 할 금융당국이 일자리 감독을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정부의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완화가 미적거리고 있고 오히려 잇단 반(反)시장 정책으로 금융회사의 일자리 창출 여력이 떨어지는 마당에 무작정 신규 채용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 “일자리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우선”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압박하기 이전에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기회부터 열어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은 정부가 금융권의 고용 확대를 독려하기는커녕 과도한 규제로 이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가 미래 금융 일자리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엄격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인터넷은행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게 허용했지만 정작 대주주가 될 수 있는 요건이 너무 까다롭게 규정된 탓에 KT(케이뱅크) 등 ICT 대주주들은 인터넷은행 사업을 확장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당초 올해 공격적으로 채용을 늘리려 했던 케이뱅크는 최소 인원만 뽑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금융투자회사들의 발행어음 사업도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 금융회사들은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을 갖춰 초대형 투자은행(IB)의 요건을 갖춰도 금융위의 대주주 심사를 받아야 발행어음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조사를 1년 이상 질질 끌면서 발행어음 사업 인가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신용정보를 비식별화해 분석하도록 허용하는 신용정보법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빅데이터 산업’ 성장을 막고 있다. 카드업계는 당국의 일방적인 카드수수료 인하와 서울시의 ‘제로페이’ 출시의 타격을 받아 순익이 급감하고 있다. 실적이 나빠진 카드사들은 본사 및 카드모집인에 대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아무리 고용을 쥐어짜도 규제완화에 성공하지 않으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의 규제를 유지하면 비대면 거래 증가로 전통적인 영업은 줄 수밖에 없으니 일자리가 안 늘어난다”고 말했다.
○ 주인 없는 금융회사에 일자리 쥐어짜기
금융권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 타깃이 된 것은 임금 수준과 고용 안정성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은행들이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라는 점에서 정부가 마치 공공기관 다루듯 채용을 압박할 수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금융위는 시중·지방은행의 일자리 성적을 8월 발표하면서 부문별 우수사례를 꼽아 표창을 주고 향후 경영공시나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할지 여부도 검토 중이다. 금융위는 “개별 은행 평가 결과를 공개해 순위를 매기지는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금융회사들에는 적지 않은 압박이 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고용 성적표’를 발표하면서까지 금융회사의 신규 채용을 채근하는 것은 급변하는 현실을 등한시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지주의 고위 임원은 “영업환경이 변해서 지금도 직원을 40%가량 줄여야 하는데 일자리 창출이란 사회적 책임 때문에 직원을 떠안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당장 좋은 고용 실적을 내려고 단기 일자리를 급조해낼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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