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 발언’을 두고 7일 여야는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충돌했다. 청와대는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라고 밝혔지만 보수 야당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망언”으로 규정하면서 정치권이 다시 한 번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 또는 한미동맹의 토대라고 규정했다”는 야당의 비판에 대해 “논리적 비약”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백범일지에서 보더라도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에 모두 함께하는 대동단결을 주창했고 여기에 김원봉 선생이 호응했다”며 “독립 과정에 있었던 김원봉 선생의 역할에 대해 통합의 사례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무엇이 진정한 통합이냐에 대한 철학의 차이가 이런 문제(논쟁)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총리는 이날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보수의 통합은)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소위 ‘고인 물 통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총리실 관계자가 전했다. 보수 진영이 생각하는 통합의 범위가 ‘고인 물’처럼 좁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에 대해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이슈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빨갱이’ 등 색깔론을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라고 밝힌 3·1절 기념사와 ‘독재자의 후예’를 언급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등 문 대통령이 주요 행사 때마다 과거사에 대해 논쟁적인 발언을 이어가는 것이 ‘주류 교체를 위한 역사 다시 쓰기’ 행보의 일환 아니냐는 것. 실제로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펴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아직 묻혀 있는 역사가 많다. 광복 이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안 됐던 게 지금까지 내려왔다”며 “친일 청산, 역사 교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반드시 해내야 할 역사적 운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은 “사회 통합으로 위장한 분열의 언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6·25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현충일 추념식) 자리에서 언급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결국 내 편 네 편 갈라치는 정치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사회 통합을 말하려다 오히려 이념 갈등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게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 우선 입 달린 의원 한 명이라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적어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차 전 의원을 당에서 영구히 축출해 공당으로서의 위엄을 세우라”고 비판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여야 위원들도 충돌했다. 김원봉 서훈 추서가 현실화하기 위해선 정무위에 제출된 상훈법 개정안이 먼저 통과돼야 한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대통령 추념사는 ‘임기 내에 김원봉에게 건국훈장을 주라’고 가이드라인을 준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에 “국회가 열리는 대로 상훈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이날 문 대통령을 다음 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곽 의원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관련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수사권고 대상이 됐지만 4일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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