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다고 느끼면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위협을 느껴 어딘가로 숨거나 도망가려 합니다. 기업과 자산가가 경제 현장에 남아 있어야 궁극적으로 나눌 수 있는 파이도 생기는 거죠.”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선출된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는 9일 본보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분배 정책을 정밀하게 검토, 수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계층별 근로 의욕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분배를 개선하면 내수시장이 든든해지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자산가들이 ‘내가 벌어서 남들 준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니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분배 방식과 관련해서도 “돈을 직접 나눠 주는 건 분배 과정에서 돈을 내는 사람, 돈을 받는 사람 모두 일을 하지 않게 만든다”며 “실업수당이 지나치면 차라리 실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구직자가 많아지듯 모든 계층이 일할 수 있는 선에서 분배가 이뤄지는 게 맞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책 신뢰도와 관련해 “리디노미네이션 등의 얘기가 나오면서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요즘 이런 불확실성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하고 리디노미네이션 단행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신뢰 저하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재정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중심이 된 ‘톱다운’식 정책 결정 과정을 손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청와대가 숫자(실적)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있는 재정조차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며 “청년들에게 100만 원씩 주는 식의 퍼주기 정책은 비효율적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나 분배 정책은 현장과 가까울수록 실제로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한지 잘 안다”며 “‘상부’에서 숫자에 집착하다 보면 부정 수급자가 생겨도 현장 공무원들이 눈감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오너에게 경영 결정권이 몰려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세계적인 경제 변화에 오너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며 “세계 기업 시장의 선두에서 뛰기 시작한 대기업 오너들이 겪는 성장통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