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수식어는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이강인(18·발렌시아)이 보여준 활약은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강인은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세네갈과의 8강에서 한국이 터뜨린 3골에 모두 관여했다. 0-1로 뒤진 후반 17분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1-2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8분에 정확한 코너킥으로 이지솔(20·대전)의 헤더골을 도왔다. 2-2로 맞선 연장 전반 6분 조영욱(20·FC서울)에게 자로 잰 듯한 길고 정확한 패스를 연결한 것도 그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강행군을 이어온 이강인은 3-2로 앞선 연장 전반 추가시간에 교체됐다. 승부차기를 할 때는 키커로 나설 수 없었지만 동료들을 찾아가 “이길 수 있다”며 응원했다.
중국의 ‘시나스포츠’는 “이강인이 혼자 3골을 만들어내며 영웅이 됐다. 장차 손흥민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회 개막 전 “이강인은 한국의 지극히 중요한 보배(至寶)”라고 했던 일본 언론들도 “한국이 이강인의 활약을 앞세워 36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고 전했다.
이강인은 일찍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6세인 2007년 KBS 2TV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 시즌3’에 출연할 때부터 남다른 기량을 뽐냈다. 당시 ‘슛돌이 팀’ 사령탑으로 이강인을 지켜봤던 유상철 K리그 인천 감독은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 나이에 그렇게 공을 잘 차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특히 킥의 정확도가 뛰어났다. 기술을 알려주면 스펀지처럼 흡수했다”고 기억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이강인은 10세 때인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팀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축구 유학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19세 이하 대표팀에 뽑혔던 이강인은 10월 스페인 국왕컵에 출전해 역대 한국인 최연소 유럽 1부 리그 출전 기록을 세웠고 올해 1월 발렌시아 팀 역사상 최연소로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했다. 2018∼2019시즌 정규리그 3경기를 포함해 발렌시아 소속으로 9경기에 출전했다. 올해 3월에는 역대 일곱 번째 어린 나이(18세 20일)로 성인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비록 A매치에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이강인은 ‘막내 형’으로 통한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 “축구를 잘하면 형”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은 맏형 못지않다는 의미도 담겼다. ‘막내 형’은 일본과의 16강전을 앞두고 주장 황태현(20·안산)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주장으로서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면 “경기장에 오시는 팬들이 애국가를 크게 불러 주시면 좋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상대가 우리보다 국가를 크게 부른 게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강인은 그때부터 ‘애국가 크게 부르기 전도사’가 됐다.
4월 23일 20세 이하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 이강인은 “폴란드에 최대한 오래 머물면서 형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했다. 2017년 국내 개최 대회에서도 16강에 머물렀던 한국으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목표인 듯 보였지만 한국은 이미 역대 최고의 성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강인은 4강을 확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은 형들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형들과 좋은 추억을 더 만들어 역사를 새로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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