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3개국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내일 노르웨이 오슬로대 강연을 통해 새로운 한반도 평화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청와대가 예고했다. 마침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린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 완전한 비핵화라는 큰 틀의 합의를 담았다. 하지만 원론적·선언적 문구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로 인해 북한이 자신들의 의무사항인 비핵화를 마치 흥정의 담보물인 양 여기면서 북-미 협상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위태로웠고, 결국 2·28 하노이 결렬 이후 북-미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독일에서 ‘베를린 선언’을 내놓았듯 이번 ‘오슬로 선언’을 통해 새로운 대북 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어제 핀란드에서 “조만간 남북,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냉담하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은 오슬로 연설이 북한을 설득하는 계기가 되기를 더욱 바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성공신화’로 자평하는 베를린 선언도 당시로선 말 그대로 선언이었을 뿐이다. 베를린 선언 이후 북한은 오히려 더 큰 도발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갔고, 해가 바뀌어서야 남북 대화에 호응했다. 당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국제사회의 공고한 대북제재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시간은 북한 편도, 미국 편도 아니다. 경제 파탄과 식량난은 갈수록 김정은 정권을 옥죄고 있다. 미국을 향해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며 조바심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내년 11월 대선까지 북핵 불확실성을 안고 가기엔 부담이 큰 만큼 마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앞세운 구상만으로 북-미 대화를 촉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다. 북핵은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북한에만 시각을 고정시킨 채 주변국에 눈감아선 외톨이로 전락할 뿐이다. 패권 경쟁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강요한다. 새 질서에서 남북끼리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