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가동률 34%, 곳곳에 임대 현수막… 위기의 구미공단

설립 50주년 구미공단 현주소
대기업 떠나고 줄줄이 휴업-폐업… ‘구미형 일자리’로 고용 창출 나서
공단 활성화에 기여할지는 미지수

10일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 1단지의 한 공장 옆 철조망에 공장 임대와 매매를 알리는 공인중개업소의 현수막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박광일기자 light1@donga.com

10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남구미 나들목을 빠져나와 경북 구미시 공단동 구미국가산업 1단지 쪽으로 향하다가 한 공장 입구에 걸린 간판이 눈에 띄었다. ‘현 공장 임대 평수·조건 맞춰드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건물면적이 4만 m²로 한때 300명 가까운 직원이 일했던 대기업의 면사 제조공장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섬유산업 침체로 공장 문을 닫은 뒤 건물을 임대하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건물 세 칸 가운데 두 칸은 가전제품업체와 포장업체가 창고처럼 쓰고 있고 나머지 한 칸이 비어 있다”며 “1공단에는 휴업이나 폐업한 빈 공장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공장 주변을 둘러보니 담벼락과 전신주 곳곳에 ‘공장 매매’와 ‘임대’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한 공장은 노란 줄과 붉은 플라스틱 고깔로 입구가 막혀 있고 그 너머 마당에 각종 자재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 공장을 둘러보러 온 공인중개사 A 씨는 “최근 법원 경매에 매물로 나온 공장”이라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경매로 넘어가는 공장이 예전보다 20∼30% 늘었다”고 말했다.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은 구미공단의 씁쓸한 현주소다. 한때 내륙 최대의 생산수출기지로 꼽혔지만 대기업이 떠나고 일자리가 줄면서 구미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11일 구미시와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구미공단의 올 1분기 가동률은 65.9%로 전국 평균 76.9%를 한참 밑돌았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 가동률은 올 3월 기준 34.8%였다. 2013년 367억 달러였던 구미의 수출액은 지난해 258억 달러로 5년 만에 3분의 1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국가 전체에서 구미가 차지하는 수출 비중도 6.6%에서 4.3%로 감소했다. 2015년 10만 명이 넘던 근로자도 계속 줄어 올 2월 8만9553명이 됐다.

구미공단 경기 침체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역 경제의 중추였던 대기업이 잇따라 지역 밖으로 빠져나간 것을 꼽는 사람이 많다. LG디스플레이는 2000년대 중반 주력 생산시설을 경기 파주로 옮겼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베트남에 휴대전화 생산시설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윤곽이 드러난 구미형 일자리는 가뭄의 단비다.

7일 경북도와 구미시로부터 투자 유치 제안서를 받은 LG화학은 구미에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LG화학에 각종 세제 혜택과 근로자 복지 지원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구미형 일자리가 공단 활성화에 기폭제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당초 알려진 배터리 완제품이 아닌 소재공장인 데다 투자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는 약 5000억 원 수준에 그치고 직접고용 인원은 1000명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미공단에서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서모 씨(61)는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을 받은 LG화학이 마지못해 투자하는 느낌이다”라며 “향후 10년간 120조 원이 투입되는 경기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와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구미시 관계자는 “LG화학과 실무협의를 하는 단계여서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구미형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 유치 활동을 계속 벌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