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불쑥 나타나 “내가 친아빠”… 입양자녀 정보 너무 쉽게 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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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 민원서류 통한 노출에 불안

지난해 6월 A 씨 부부가 살고 있는 부산 사상구의 한 아파트에 낯선 남성이 찾아왔다. 이 남성은 ‘아이를 돌려 달라’며 초인종을 눌러대면서 문을 두드렸다. A 씨 부부에게는 입양한 한 살배기 딸이 있다. A 씨 부부를 찾아온 남성은 입양한 딸의 친부였다. 이 남성은 A 씨 부부의 집 앞에서 한참을 버티다 돌아갔다. A 씨 부부는 몇 달 뒤 이사를 했다.

친부는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에 나와 있는 양부모의 거주지 주소를 보고 딸을 찾겠다며 A 씨 부부를 찾아간 것이다.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에는 친생모의 주민등록번호뿐 아니라 양부모의 거주지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증명서는 입양아가 민법상 성년인 만 19세가 되기 전까지는 발급돼서는 안 되는 서류다. 친생모나 양부모뿐 아니라 입양아 본인도 만 19세가 되기 전까지는 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이 같은 규정을 모르는 주민센터 직원이 A 씨 부부가 입양한 아이의 친부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준 것이다.

A 씨 부부처럼 주민센터를 비롯한 행정기관에서 발급하는 각종 서류를 통해 입양 관련 정보가 노출되면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입양 가족들은 주민센터에서 미성년 입양아의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가 아무렇지 않게 발급되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충북에서 3세 입양아를 키우고 있는 박모 씨(40·여)는 “주민센터가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를 규정에 어긋나게 발급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인가 해서 직접 발급을 신청해 봤더니 신분증만 제출했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떼 줬다”며 황당해했다. 경기 성남시는 입양 지원금을 주겠다면서 미성년 입양아를 둔 양부모들에게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할 것을 요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민등록초본을 통해 입양 관련 정보가 노출되는 사례도 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양모 씨(48)는 2015년에 생후 93일 된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양 씨는 입양한 딸의 주민등록초본을 뗐다가 입양되기 전 딸의 이름과 입양기관의 주소도 함께 표시돼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곧바로 양 씨는 주민등록초본에서 입양 관련된 기록은 삭제해 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렸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양 씨는 “입양아나 입양 부모가 원치 않는데 입양 관련 정보가 공문서에 버젓이 표시돼 있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대부분의 입양 부모들은 입양 사실 자체를 영원히 숨기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입양과 관련된 내용은 가족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국 600여 명의 양부모가 가입해 있는 전국입양가족연대(전가연)는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진정서를 통해 “성인이 되지 않은 입양자의 친양자 입양관계 증명서 발급을 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등록초본, 기본증명서 등에 표시돼 있는 입양아의 개명(改名) 정보 등은 삭제하거나 노출이 되지 않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때 입양 사실이 표시되지 않기를 원하면 ‘미표시’를 선택하면 된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입양 부모들은 학교나 유치원, 직장 등 주민등록초본 제출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상세본 제출을 원하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한사회복지회 관계자는 “출산율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입양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원치 않는 입양 사실 공개로 입양 부모와 입양아 모두가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박상준 기자
#입양자녀#민원서류 노출#입양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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