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계의 대도시처럼, 서울에도 걸인이 있다. 6·25전쟁 이후 많은 실향민, 노숙인 그리고 부상병이 있었고, 당시 정부의 복지제도 또는 자선단체가 미흡해 이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2019년 현재 실향민, 부상병은 거리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구걸하고 있다. 경범죄처벌법은 “공공장소에서 구걸을 하여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사람”을 위반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다른 수많은 경범죄처럼 각각 경찰관의 재량에 맡겨진 것이라 실행은 산발적이다. 나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못한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베그패커(begpacker)’다. 구걸하다(beg)와 배낭여행자(backpacker)라는 단어가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다. 무슨 뜻일까? 한국에 여행을 와서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주로 유럽 또는 다른 서양에서 온 백인들이 구글 번역기를 통해 쓴, 지금 보는 칼럼보다 한층 더 어설픈 한국말을 써놓고 보행자들을 기다린다. 예를 들면 “나는 여행자입니다. 나는 충분한 돈이 없다. 제발 돈을 주세요” 하는 식이다. 종로 인사동에 가면 이런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아시아계 영국인 친구는 이런 베그패커를 볼 때마다 화를 낸다. 서양 사람이 아시아에 와서 현지 주민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화가 나는 더 큰 이유는 백인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한국인들의 감정을 조종하기 때문이란다. 내 친구 말에 의하면 한국인은 난처한 상황에 놓인 백인을 보면 저도 모르게 동정이 생긴다고 한다. 내가 과연 그러냐고 묻자 그는 나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다. “백인 말고 피부 색깔이 약간 있는 유색인종이 같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는 구걸만 하지 않고 물건을 팔기도 한다. 깔개를 깔고 그 위에 본인이 만든 한심한 장식품, 애처로운 엽서, 또는 알아보지 못할 캐리커처를 전시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음악 연주나 공연을 한다. 싸구려 장신구를 파는 것만큼 나쁘진 않다. 좋은 공연은 주변 분위기를 북돋워 준다. 그런데 내 친구 눈에는 여전히 ‘감정 조종짓’이다.
확실한 것은 베그패커가 많을수록 거리가 지저분해지고 보행자의 통행 또는 전경을 훼손할 수 있음이다. 그렇게 보면 이들의 행위를 격려하기보다는 단속하고 말려야 한다. 무엇보다 이 행위는 관광비자 조건 위반이다. 관광객으로 한국에 오면 일을 하거나 돈을 벌면 안 된다. 한국인도 다른 나라에 가서 같은 노릇을 하면 안 된다. (어떤 나라는 관광비자 발급 조건 중 하나가 현금 또는 은행 계좌에 최저액의 돈을 소유하고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부디 여행하며 돈을 벌고 싶다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으시라.
나는 베그패커보다 더 심한 감정 조종짓이 있다고 본다. 바로 내가 일컫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 구걸 행위’다. 주요 관광지에는 스님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외국인을 보면 후다닥 다가가 빤짝거리는, 행운을 비는 카드를 건네주고는 웃으며 돈을 요구한다. 받는 사람의 양심을 찔러 구걸하는 행위다. 진짜인지 가짜 스님인지 모를 이 사람은 보통 한국 사람이고 대상자는 외국 사람인데 거꾸로 된 현상도 찾을 수 있다. 인사동에서는 유럽에서 온 한 인도 종파 소속자들이 지나가는 한국 사람에게 다가가 한국말로 번역된 인도 성경을 건네준 뒤 기부해달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사람은 일단 무언가를 선물 받으면 무언가를 돌려주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준다. 정말 교활한 돈벌이다.
베그패커든 기브 앤드 테이크 구걸행위든 둘 다 어른스럽고 영광스러운 돈벌이 방법은 아니다. 각 나라, 대도시의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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