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해 “서두르지 않는다(no rush, no hurry)”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과정에서 무려 네 차례나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강온 양면전략을 동시에 펼치는 현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는 일정 기간 잘 지낼 것이다. 제재는 유지되고 있고 인질들과 미군 유해가 돌아왔으며 어찌됐든 핵실험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북-미 양국 간 실무협상이 절실한 상태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과 실무 차원의 협상에 계속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 1년 전 싱가포르 회담에서 한 약속들의 이행 진전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 북한 측과 계속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왔다. 하지만 CNN은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편지 내용이 부실했고 비핵화 협상의 진전 방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CNN은 “김 위원장이 첫 회담 1주년 직전에 친서를 보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자신의 성공을 자랑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부정적 기류도 고려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바뀔 수도 있다. 내가 바뀌면 여러분은 매우 빨리 그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미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지금은 잘 지낼 의지가 있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대응 방향을 확 틀어 버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 놓으면서도 대북 제재를 앞세운 북한 압박은 강화하고 있다. 북한이 ‘친서’로 회유책을 제시하는 가운데에도 부정적인 행동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유엔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일본 영국 등 25개 동맹국들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불법 해상 정제유 환적을 통해 대북 제재를 위반한 북한에 대한 추가 정제유 공급 중단을 요청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대북제재위에 보낸 문서에서 북한이 올해 79차례의 불법 해상 정제유 환적을 통해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서 정한 정제유 연간 반입 상한선(연 50만 배럴)을 이미 넘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정제유 수입 제한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를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38노스는 이날 “4월 11일∼5월 5일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 신포조선소에서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저강도로 위협을 지속하는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날 뉴욕 유엔 주재 미대표부 청사에서 15개 유엔 안보리 이사국과 당사국인 한국 정부 대표를 만났다. 조태열 주유엔 대사는 이날 회동 이후 취재진과 만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와 현 상황, 앞으로 협상 전망에 대한 일반적인 토의를 했다”며 “대화와 제재 얘기가 다 나왔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