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불합리한 세상에 날리는 통쾌한 한 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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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2/이케이도 준 지음·이선희 옮김/각 416쪽·각 1만5000원·인플루엔셜

간만에 통쾌한 ‘무협지’를 만났다.

검객은 한자와 나오키. 은행원이다. 거품경제시대 끝자락에 대형 은행에 입사. 세상이 내 맘대로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조직 생활이 그런가. 이젠 고만고만한 중간간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자 상사들은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그냥 고분고분히 따라야 하나. 인생이 걸린 문제. 그럴 순 없다. 한자와는 오랫동안 벼려왔던 칼을 뽑는다.

물론 소설에 진짜로 칼이나 초식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웬만한 무협 세계보다 더 박진감이 넘친다. 주제는 한자와의 한마디에 다 녹아 있다. “상대가 선의를 가지고 호의를 보인다면 성심성의껏 대응해. 하지만 당하면 갚아주는 게 내 방식이야. … 열 배로 갚아줄 거야. 그리고 짓눌러버릴 거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그게 상사건, 가진 자건, 악당이건. 칼은 춤추고, 꽃잎은 우수수.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은 무협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일개 회사원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되겠나. 아마 현지에서 원작소설은 물론 드라마까지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던 이유도 그게 아닐까.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지만, 누구나 망토 두르고 하늘을 날고 싶은 맘. 21세기도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이 작품은 우리네 현실에 비추면 SF(공상과학)에 가깝다.

거창한 문학성은 없을지 몰라도, 흡입력 하나만큼은 만렙(최고 레벨)이다.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전문성을 살려, 일반인에겐 낯선 금융계의 속살을 흥미롭게 들춰낸 점도 매력적이다. 일본 문학은 노벨 문학상도 질투 나지만,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진짜 힘이 아닐까. 조만간 나온다는 3, 4권이 기다려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자와 나오키#이케이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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