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으로 위협당해 돈을 건넸다면 그것은 내가 능동적으로 행한 일일까. 아니면 수동적으로 당한 일일까. ‘수동’과 ‘능동’이라는 개념 너머에 ‘비자발적 동의’를 설명하는 개념도 있지 않을까.
능동과 수동의 대립은 필연적인 것처럼 우리 사고 깊숙한 곳을 지배하고 있다. ‘생각의 틀’인 언어에도 ‘능동태’와 ‘수동태’로 반영돼 있다. 일본의 대표적 철학자인 저자는 능동태도 수동태도 아닌 그 중간이라고 알려진 그리스어의 문법용어 ‘중동태(中動態·middle voice)’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행위의 주체와 책임에 대한 담론을 풀어낸다.
이 책의 원고들은 원래 2014년 일본의 ‘정신간호’라는 잡지에 연재됐고 의학서원 출판사가 발행하는 ‘돌봄(care)’ 시리즈의 한 권으로 출간됐다. 철학자로서 정신분석을 포함한 의료에 관심을 갖던 중 의존증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천적 고민에서 연구를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다. 중동태에서 출발한 연구가 스피노자와 푸코, 아렌트까지 언어학과 철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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