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물에 빠뜨린 닭 달랬어?” 영화 ‘집으로’(2002년)에서 일곱 살 상우는 프라이드치킨 대신 닭백숙을 내놓은 할머니에게 떼를 쓴다. 난생처음 산골에 사는 외할머니 집을 찾아온 상우는 걸핏하면 괴롭히고 투정을 부리지만,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할머니는 무조건적 애정으로 손자를 묵묵히 감싼다. 그 지극한 사랑이 마침내 철부지 손자의 마음에도 깊숙이 스며든다는 단순한 줄거리였으나 영화는 ‘외할머니’ 키워드로 폭넓은 공감을 얻고 흥행에 성공했다.
▷3대가 한집에서 북적거리며 사는 가족을 보기 힘든 세상이 됐어도 손주 향한 할머니의 일편단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친가든 외가든 극진한 내리사랑에 우열을 따질 순 없으나 ‘외할머니’란 말에서 왠지 푸근한 정감과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시인 서정주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같은 작품이나, 7080시절 ‘논두렁 밭두렁’의 ‘외할머니댁’이란 노래가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일 터다. 이 같은 친밀감을 진화적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외할머니는 ‘전통적 모성’의 상징이자 정서적 안식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육아는 늘 벅찬 과제였다. 그 책임을 어머니가 전담하거나 주도해 왔기에 다급할 때면 할머니, 특히 ‘엄마의 엄마’가 나서는 일이 다반사였다. 엄마와 핏줄로 이어진 아이, 그 아이가 다시 ‘엄마의 엄마’와 뿌리 깊은 인연을 맺는 셈이다. 아이 양육 과정에서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먼저 ‘외할머니 찬스’를 쓰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에서 구조대원이 외할머니와 그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소녀의 시신을 발견했다. 지하 선실 입구에서 찾아낸 최연소 희생자는 자영업을 하느라 바쁜 부모 대신에 외할머니 손에 자란 6세 유치원생이었다.
▷일 때문에 남은 남편만 빼고 어린 딸을 돌봐주는 친정 부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떠난 한 가족 4명의 효도여행이 한꺼번에 모두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자신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절체절명 순간에도 어린 손녀를 품에 꼭 끌어안아 준 할머니의 애틋한 마음, 그 사랑이란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가. 맞벌이 가정이든 아니든 일상생활과 정서적 측면에서 ‘외할머니’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유년 시절 자신을 ‘내 강아지’라고 부르며 샘솟는 애정을 표현했던 친할머니를 ‘마음속 쉼터’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손자 손녀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큰 나무, 이 땅의 모든 할머니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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