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 방문 기간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방침을 언급한 것은 정부가 지난달 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나온 첫 발언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부가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핵심협약 비준을 반드시 막겠다는 입장이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스웨덴 살트셰바덴 그랜드호텔에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은 나의 대선공약이기도 하고, 한국의 전체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는 뢰벤 총리가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당 비준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이는 대단히 큰 시그널(신호)”이라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한국은 ILO의 8개 핵심협약 가운데 4개를 아직까지 비준하지 않았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는 비준되지 않은 4개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와 제98호)과 강제노동 금지 협약(제29호) 등 3개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LO 100주년 기념 총회에 참석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이달 중 관계부처, 노사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음 달 외교부에 비준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9월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과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함께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3개의 핵심협약을 비준할 경우 국내 노동시장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오게 된다. 현재 금지된 해직자와 실직자의 노조 가입이 가능해져 해직자 조합원 문제로 ‘법외 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될 수 있다.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공무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되고, 노조 설립 신고제도가 없어진다.
경영계는 “노조 할 권리가 강해진다”며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 부정적이다. 재계는 “정부의 ILO 핵심협약 추진은 노조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조치”라며 “경영계의 방어권이 동시에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재계에선 주요 선진국 및 경쟁국가처럼 파업 중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2년에서 3, 4년으로 연장하는 등 사용자의 방어권을 인정한 뒤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파업 시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며 사용자의 영업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강성 노조 때문에 한국에서 사업할 의욕과 의지가 없다고 하는 기업이 많다”며 “한국에서 탈출하는 기업이 많아지면 기업경쟁력이 약화되고 이는 곧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가별 특수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ILO 100주년 기념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각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문화적,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각자 고유한 상황에 가장 잘 부합하는 노동시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1 야당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어 실제 국회 비준동의와 관련 법 개정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비준을 반드시 막을 방침이다. 지난달 23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핵심협약 비준은 강성노조를 키우려는 계획”이라며 “정부는 비준을 무조건 관철하려 하지 말고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선 이와 상충되는 노동조합법 등의 개정이 필수적인데,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비준은) 시기상조”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지난해 7월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노사정 간 합의를 시도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지난달 논의를 끝냈다. 이런 점에 비춰 국회에서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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