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왜 우리는 정치언어의 사막에 살고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8일 03시 00분


내년 총선 공천 감시에 또 실패하면 막말 공해에서 영영 못 벗어날 듯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흑색선전은 비아○○와 같다. 절망적 상황에서 한번 일어서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지만, 자칫 스스로 죽는 수가 있다.”

199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논평이 나오자 여야 할 것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의 유종필 대변인(전 서울 관악구청장)이 상대 후보들의 흑색선전이 도를 넘었다며 낸 것이었다. 비수 속에 해학이 있는 논평에 당하는 쪽에서도 항의보다는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삭막해진 정치인들의 말을 접하면서 이전 정치인들의 말을 되새기는 경우를 주변에서 여럿 봤다. 이전의 말과 글이 꼭 품격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막장 일변도는 아니었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과 관련해 낸 ‘천렵질’ 논평을 필두로,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의 ‘한센병’ 논평, 민 대변인의 ‘천렵질’ 논평에 ‘토가 나올 지경’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논평까지 일일이 세기도 어렵다.

이전에는 정치인의 말이 시대의 정서를 관통하는 경우가 있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내로남불’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등 지금도 쓰는 말을 20년 전에 만들어냈다. 대변인만 다섯 번 지낸 이낙연 국무총리는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단문(短文) 논평으로 각종 선거를 돌파했다. 2002년 10월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 반대하며 탈당파가 속출하자 그가 낸 대변인 논평은 한 줄이었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총리가 된 뒤 국회에서 보여준 ‘사이다 답변’도 이런 시간의 축적 덕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 정치의 말과 글은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기자는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인문학적 감수성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 수준을 의심한다. 다양한 기회로 정치인들을 만나고 접하지만, 무릎을 치게 하는 인사이트나 주요 현안 해결을 위한 통시적 관점을 제시하는 경우를 요새는 거의 못 봤다. 대부분은 내년 총선, 특히 공천 향배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발밑만 보다 보니 말과 글에 콘텐츠는 물론 페이소스와 유머가 배어들 틈이 없다.

한국의 사례는 아니지만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봤다. 지난해 별세한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의 영결식장 연단에 민주당 유력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섰다. “My name is Joe Biden(내 이름은 조 바이든입니다).” 얼굴을 모를 리 없는데 너스레를 떠니까 웃음이 터졌다. 그러고는 “I‘m a Democrat, and I love John McCain(나는 민주당원입니다. 그리고 존 매케인을 사랑합니다)”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여기 왜 있는지를 함축한 두 마디. 30분간의 조사(弔辭) 내내 눈물과 박수가 이어졌다. 국적, 시대와 무관하게 절차탁마한 말의 울림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정치 언어의 사막화는 결국 잇따른 인사 참사, 그러니까 부실 공천의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친박 감별의 광풍이 몰아쳤던 2016년 총선은 물론이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등을 제도권에 들인 2012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서로 엇비슷한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다 보니 쓰레기 같은 말에도 자정 작용이 멈춰 섰다.

정치권이 벌써부터 내년 4월 총선 모드다. 유권자들이 정치 혐오에 지쳐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내년엔 지금보다 더 심한 막말과 저질 글의 공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쯤 되면 정치 복원은 더 요원할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총선#흑색선전#천렵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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